
Tinker with / 윤몽
w. 봉다리
‘똑똑’ 희미한 창문 두드리는 소리였다. ‘똑똑’ 또다시 울리는 노크에 문이 열리자 앳된 얼굴은 환하게 웃었고, 덕분에 밤공기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달아졌다. 내미는 손에 이끌려 허공을 걷자 달밤의 자장가는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게 머릿속을 맴돌았고 우리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춤이 되었다. 발아래도, 머리 위에도 우리 주변은 온통 반짝일 뿐이다. 수천 개의 별도, 도심의 네온사인도 밝았지만 가장 밝은 달빛은 오로지 여기만 비추는 듯 아주-
‘똑똑’
아주-. 황홀함에 취해 단 숨을 들이쉬던 중에 느닷없이 들려오는 소리. 공중에 둥실둥실 떠있는 상태로 멈췄다. 창문에 노크하는 건 아까 끝났는데?
‘똑똑똑’
“ㅇ .. 야 ..”
똑똑,보단 조금 더 큰- 그렇다고 쾅쾅 까진 아닌 그런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말소리도 들렸다. 이 허허벌판의 공중에서?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돌리니, 어디 갔지? 피터 팬. 조금 전까지 손을 잡아주던 사람이 없었다. 반짝이던 빛도 달콤한 향도 즐겁던 음악도 사라진 새카만 허공에 혼자 떠있다는 것을 깨닫자 아무것도 닿지 않는 발이 무서웠다. 마치 물속에서 쥐가 난 사람처럼 헛발질은 계속되고, 알 수 없는 소리는 더 커지고-
“윤호야! 일어나라니까!”
머리통을 울리는 제 이름 탓에 눈이 단번에 번쩍 뜨였다. 그것도 더 큰 소리를 내면서. 허우적거리던 발이 꿈하고 현실도 구별 못해서 벽을 부술 듯이 걷어찼거든. “형... 잠시만, 혀엉... 발이 사라진 것 같아요. 지금...” 다행히 부서지진 않은 발을 부여잡고 웅얼거리는 나에겐 관심도 없는지 형은 위 침대를 두드리며 “산이는?” 하고 물었다. “형 나 씻고이써어-” 그 멀리서도 들렸는지 욕실 벽을 메아리치는 산이 목소리에 “어어-” 대충 대답한 형은 다시 몸을 숙여 내게 말했다.
“일어나. 가야지.”
이불 위를 퉁퉁 두들기는 형의 말에 알았다고 답했다. 대답은 했다. 지난 추석 때 빚은 송편 마냥 이불을 돌돌 말아 누웠지만 말이다. “아휴, 정윤호-” 급기야 형이 이불을 뜯어냈다. 추워, 조그만 손이 내 볼을 잡아 눌린다. 이리저리 밀리는 살갗에 억지로 떠진 눈으로 처음 본 건, 꿈속의 그 어린 얼굴이었다.
*
알고 있다. 웃기는 꿈인 거. 꿈이 다 그렇지.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일들의 연속이잖아. 원래 홍중이 형은 꿈에 자주 나왔다. 저번엔 형이랑, 민기랑, 매니저 형들, 사촌 형들까지 나와서 우동도 먹었었는데. 진짜 맛있게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깼었다. 어이없지. 음. 그러니까 누군가가 꿈에 나온다는 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거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아침부터 부서질 뻔했던 오른쪽 발바닥이 찌릿했다. 조용히 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그냥 오래 봐서 나온 거야. 형이랑 알고 지낸지 오래니까. 다른 의미는 없고 오래 본 사이니까. 며칠 전에 형 예명이 팬- 피터 팬의 그 팬이었단 인터뷰를 봐서 그럴걸? 아무 의미도 없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괜히 조수석에서 졸고 있는 뒤통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여분의 노란 칫솔은 결국 형의 손에 들어갔다. 원래도 알고는 있었지만, 형은 생각보다 더 허술한 사람이었다. 잃어버리는 것도 많고, 두고 다니는 것도 많고. 멤버들을 챙길 땐 엄청 야무지면서 조그만 제 한 몸은 그렇게 벅차했다. 손이 작아서 그런가? 하긴, 그 작은 손안에 에어팟 케이스도 과했다. 그래서 매번 잃어버리나. 어쩔 수 없지. 내가 챙기는 수밖에. 다른 뜻은 아니고, 그냥. 해외 투어에선 내가 룸메이트니까. 형이 안 챙길 법한 사소한 것들은 내가 두 개씩 챙겼고, 우리방의 키도 반드시 내가 챙겼고, 종종 두고 다니는 것들도 내가 들었다. 어쩌면 형의 손 보다 더 열심히 형을 챙겼다. 꼭, 오른팔처럼.
“또 이제 제가 홍중이 형의 오른팔이잖아요.”
“제 왼쪽에 있는데요?”
내 말에 재미있다는 듯 작은 왼손을 펼쳐 보이는 형. 그 뒤에 비치는 얼굴이 언젠가 봤던 피터 팬의 얼굴과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겠지, 그건 형이었으니까. 그치만, 좀 달라. 그땐 다디단 향도 났고, 고운 음악소리도 들렸는데. 뭐였더라? 문득 오래된 꿈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
그게 아쉬웠을까. 브이앱을 끝내고 잠든 것까진 확실하게 기억하는 데 눈을 뜨니 별천지 아래였다. 나 이거 알아, 자각몽? 뭐 그런 거 있잖아. 처음 온 게 분명하지만 익숙한 빅벤을 감싸듯 돌며 시원한 런던 밤공기를 누볐다. 다 꿈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겁도 없었고 걱정도 없었다. 누군가 어깨를 톡톡 쳤고 나는 돌아보기도 전에 그게 피터 팬이라는 걸 알았다. 잊었던 단내도, 음악도 함께 다가왔으니까. 씩 웃으며 흔드는 조그만 손을 잡았다. 아니, 그냥. 뭐든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니까 꽉 쥐었다. 저번처럼 런던 공중 한복판에서 날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내가 챙겨야지.
*
형이랑 같은 방을 쓰는 건 나쁘지 않았다. 좋아, 좋았다고 해야 하나. 조금 챙겨야 할 게 많았지만 뭐, 생각보다 재밌기도 했으니까. 리더의 권한으로 알아낸 방 번호로 장난전화도 걸 수 있었고, 일정들도 바로 알 수 있었고, 의외로 쿵짝이 잘 맞아서 브이앱 필터로 디제이 흉내도 낼 수 있었고, 형과 얘기도 많이 할 수 있었고.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내가 몰랐던 형에 대해 알 수 있고, 형과 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고, 남들이 모르는 형을 알 수 있으니까. 아.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땐 인정해야 했다. 난 형이 좋았다.
인정한 뒤부터 꿈속 피터 팬은 더욱더 자주 찾아왔다. 형을 알아가고, 관찰할수록 어딘가 어색했던 얼굴은 구체적으로 변했고, 막연했던 동화 속의 초록색 옷은 형이 자주 입는 옷으로 바뀌었으며, 큰 노랫소리들에 묻혀 들린 적 없던 웃음소리는 점점 더 뚜렷하게 귓가를 간질였다. 이제 현실의 형과 구분할 수 있는 건 함께 다가온 달짝지근한 향과, 환상적인 음악. 그리고 피하지 않고 맞잡아 오는 피터 팬의 작은 손뿐이었다.
*
“요즘 왜 이렇게 못 일어나?”
잠든 날 내버려 두고 혼자 조식까지 챙겨 먹고 온 형은 내가 준 노란 칫솔을 입에 물고 웅얼거렸다. 그랬나? 사실 원래도 잘 일어나는 편은 아닌데. 저 둔한 형이 알아챌 만큼 그렇게 티가 났던가. 매일 밤 만나는 피터 팬이 선명해지고 우리가 더 가까워질수록 꿈을 깨기 싫었다. 눈을 뜨면 현실의 형이 있는데도, 내 손 맞잡는 작은 손이 아쉬워서 사라진 허공을 쫓아 억지로 감곤 했다. 어쩔 수 없잖아. 현실에선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형은 손잡는 걸 싫어하니까.
“깨워줄 줄 알았는데.”
“깨웠어. 너가 못 들은 거지.”
솔직하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 칭얼거렸다. 사실 혼자 밥 먹으러 간 거, 조금 섭섭한 마음도 있었고. 근데 진짜로 깨웠는지도 몰랐다. 웃기는 일이지. 꿈속의 가짜를 만나느라 진짜가 부르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게.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자 형도 양칫물을 뱉으러 화장실로 들어섰다. 어떻게 말해. 형 꿈을 꾸느라 못 들었어요. 형 손 만지느라 꿈에서 깰 수 없었어요.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참 이상한 변명이었다.
*
카메라 앞은 오히려 쉬웠다. 조금 더 다정하게 말을 해도, 조금 더 깊게 바라봐도 형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 모두가 눈치채더라도 형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되는 내 마음이었다. 마침 얼마 남지 않은 생일 덕분에 형은 내 속내도 모르고 더 사근사근하게 굴었다. 생일선물이라며 작게 썬 스테이크 조각을 먹여주며 웃어 보인다. 꿈같네. 멋진 야경과 맛있는 음식에 취한 건 나뿐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면 피터 팬처럼 손잡아 줄지도 모르지.
“저는 홍중이 형한테 이미 선물 준 거 많아요. 지금도 제 마음을 주고 있거든요.”
분위기에 취해 죽어서도 꿀꺽 삼켜야 할 단어들을 농담인 척 꺼냈다. 이런 말, 언제 할 수 있겠어. 무거운 마음이 가벼운 척 둥실거렸다. 김빠지게도 돌아온 말은 대답이 아닌 질문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나 혼자만의 외줄에 형이 올라설 필요는 없었다.
“제가 윤호한테 처음 줬던 선물 있거든요. 기억해요?”
아니, 형은 오히려 외줄을 잡아 흔들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해?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형이 줬던 텀블러. 사실은 그때부터 키워온 마음인지도 몰랐다. 반 개월 정도 쓰고 금방 녹이 쓸어 망가져 버렸던 걸 봐선 그리 좋은 것도 아닌데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지금 생각해도 미안했던지 속상한 표정을 짓는 형을 달랬다. 유용했어요, 잘 썼어요. 이제 와서 고장 난 텀블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형도 기억하고 있다는 거잖아. 내게 처음 줬던 선물을. 짝사랑은 사람을 사소한 것에 목메게 만들었다.
“저희 둘만 있어서 그런 거일지 모르겠는데 가끔 장난을 치기도 해요. 저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형이 진짜 하이텐션이 돼서 너무 재밌어요.”
기대하면 안 되나? 나한테만 특별한 것도 같은데. 우리 둘이라서 가능한 건데. 오래 한 시간만큼 내게 더 허물없는 형인 게 당연하지 않나? 눈치 보면서 은근히 뱉은 생색인데 형도 부정하지 않았다. 기대 안 할 수가 없잖아. 샌들 리폼 얘기에 나 달라고 진심 반, 농담 반담아 떠들었지만 다른 걸 해주겠다고 웃어 보이는 거. 생일 소원 얘기에 자기 소원도 들어 줄 거냐고 물어보는 거. ‘윤호 베이비'란 댓글 읽으면서 `마이 자이언트 베이비'라고 덧붙인 거. 나 잘생겼다, 나 예쁘단 댓글들만 읽어주는 거. 간지럽게 내 영어 발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순간들이 기대가 되어 마음에 덕지덕지 붙였다. 마치 경연 프로 연습생들의 전광판에 붙은 포스트잇처럼 날 응원하는 듯했다.
“Ven conmigo.”
“어떤 뜻인지만 알려주면 안 돼요?”
“같이 가자, 이런 뜻이에요.”
갑자기 다가와 귓가에 속삭인 탓에 무슨 말인지 듣지도 못해서 다시 묻자 들려오는 발음. <Ven conmigo.> 혹시 놀리는 건가 싶어 의심했더니 알려준 뜻. <같이 가자.> 하필 이렇게나 피터 팬 같은 말이라고? 실은 지금 진짜 꿈인지도 몰랐다. 어쩐지- 모든 순간이 너무 행복하더라. 형이 쓰는 망고 바디 워시처럼 달달한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귓가가 간지러운 게 조금 더 있으면 음악 소리도 들릴 것 같아. 어이없게도 이젠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안 갔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일분일초가 행복하고 아쉬워. 이대로 떠날 형도 아닌데 이상하지. 고소한다는 드립에 “아이 고소해-”라고 뱉은 형. 그거 저번에 내가 했던 말인데. 눈치도 없이 올라가는 광대를 숨겼다. 자꾸 기대하게 만들어. 내 마음은 알지도 못하면서. 조금 심통 맞아서 지금 팬들에게 반말하는 거냐고 묻자 당황한 듯 “고, 고소해요-”라고 얼버무린다.
“귀여워.”
미처 숨기지도 못한 진심이 툭 튀어나왔다. 들었나? 들었을 건데. 들었으면서 왜 모른 척해요? 차라리 형한테 귀엽다가 뭐냐고 면박이라도 줬으면 장난인 척 우기기라도 할 텐데 이렇게 지나가버리니 너무나도 내 날 것의 속내만 남아 부끄러웠다. 너무해. 고소는 내가 해야 할 판인데, 지금.
“저 형 고소 할 거예요.”
“왜?”
“그냥요.”
이유는 말 못 한다. 귀엽지나 말던가. “뭐야.”, 답하며 피식 웃는 형을 따라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눈치 없는 형은 그새 댓글에서 흥미로운 걸 봤는지 눈을 반짝였다. 제일 좋아하는 형이 누구냐고? 형이라곤 고작 둘밖에 없는 나에게 무슨 그런 질문을 해.
“저요? 성화 형이죠.”
그 말에 삐쭉이는 게 웃겼다. 그럼 형을 좋아한다고 말해주길 바라나?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습기 찬 내 마음 받아주지도 않을 사람이 겁도 없이 물었다. 아까 말했잖아요. 형 고소할 거라고. 이미 충분한 대답을 들은 줄도 모르고 성화 형에게 전화까지 걸어 일을 키웠다. 성화 형의 어필에 훈수를 두며 웃는 형, 당연히 내가 저를 고를 거라는 듯 웃는 거 같아 장난 좀 쳤다.
“홍중이 형도 저한테 삼행시 한번 해주셔야죠.”
그랬더니 호랑이가 어쩌고, 뭐, 친구? 정말 눈치도 없단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전화 넘어 들려오는 “아니에요.”
“성화 형이 질투가 많아요.”
친구가 뭐라고. 나는 필요 없으니까 성화 형이 다 가져가라지. 그럼에도 실실 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친구한테도 아끼는 단어를 나에게 쓴 거잖아. 형한테 내가 좀 특별한 거 같긴 해. 그치.
그래도 끝내 못 골랐다. 어떻게 골라. '형'으로썬 둘 다 공평하게 좋아하는걸. 전화도 끊지 않고 사심 조금 섞어서 형 볼에 내 볼을 비볐다. “뭐야, 재미없어-!” 그렇게 말하는 형은 심술 맞게 전화도 끊어버리고 툴툴거렸다. 형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길 기다렸나 봐. 지금 질투하는 거, 맞죠? 머리가 아무리 아닐 거라 말해도 심장은 이미 쌍방 그린라이트였다. 아, 어떡하지? 진짜 꿈이 아니라고? 너무 좋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좋았다.
“성화 씨, 여상 씨 저희 이거 마무리되고 브이앱 끝나면 오세요.”
이 말 듣기 전까진 진짜 좋았다. 내 머릿속엔 방송 끝나고 형이랑 둘이서 보낼 모든 순간을 떠올렸는데 갑자기 왜? 형도 나랑 둘이 있는 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껏 쌓아온 기대들이 다 내 착각이었다는 듯 와르르 쏟아졌다. 어쩌면 솔직하게 형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아서 벌 받는 건 아닐까? 아니야. 이런 마음이나 가지고 있으면서 멤버들을 질투하는 게 잘못된 건지도 몰랐다. 싫어,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섭섭한 내 마음이 너무 미웠다.
*
또 꿈이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평소와 같이 허공에서 시작하지 않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첫날처럼 노크 소리부터 시작했다는 거? 익숙한 피터 팬의 얼굴이 보였고 작은 손이 노크를 했다. ‘똑똑’, 들려오는 답변이 없자 또다시 두드렸다. ‘똑똑’ 근데 이상하지. 창문을 내가 열어줬던가? 난 이미 밖에 있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창문 대신 감겼던 눈이 떠졌다. 캄캄한 어둠에 손을 뻗어 핸드폰 시계를 보니 대충 세시 사십몇 분. 조용한 새벽에 들리는 건 옅은 숨소리뿐이었다. 괜히 귀가 간질거려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깜깜함에 적응하니 옆 침대에 누운 형이 보였다. 언젠가 성화 형이 말했던 버릇처럼 머리 옆에 말아 쥔 주먹이 이불을 잡고 꼿꼿하게 천장만 보고 잠들었다.
“이쪽으로 자면 안 되나?”
헙.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말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입을 틀어막고 급하게, 그렇지만 조용하게 뒤돌아 누웠다. 깬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절대 깨지 않아야 했다. 혹시 몰라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했다. 형의 숨소리와 내 심장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꽤 긴 시간이 흘러 심장이 차분해질 때까지도 잠들지 못했다. 잠이 안 와서, 그래서 그냥 자세를 바꾸는 거다. 형을 향해 뒤돌아 누웠다. 그래도 눈은 안 뜰 거야. 혹시라도 형이 이쪽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
“그럼 이제 홍중이 형도 뭔가 밖에서 잠들고 있는 거 같아서 빨리 편하게 침대에 오라고 해야 될 것 같아요.”
끝내고 싶지 않은 생일 브이앱을 어렵사리 끄고 방을 나섰다. 너무 길게 했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을 줄은 몰랐지. 머리만 붙이면 잠드는 사람이니까 혹시라도 업고 들어와야 할지도 몰랐다. 형을 찾아 몇 군데를 허탕을 치고 라운지에 도착했을 땐 잠들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웃기는 상황이었다. 홍중이 형의 작은 손이 성화 형에게 잡혀 있었다. 둘이 라면도 먹었나 봐. 국물만 남은 컵라면 두 개가 테이블에 놓여있고 여전히 손들은 쭈물거렸다.
“뭐해요?”
대체 뭐 하는데. 이 새벽에. 들키면 안 될 거라도 들킨 듯 화들짝 놀라더니 “아, 윤호였어? 다 끝났어?” 되묻는 형. 평소 때 다른 애들 모니터도 열심히 해주는 형인데, 끝까지 보고 있지도 않았나 봐. 수상해. 왜 놀라, 왜 말 돌려. 나도 모르게 대답 없이 손만 쳐다보자 성화 형이 답했다.
“아까 물 받다가 데였으면서 얘가 자꾸 괜찮대.”
둘이 아무 일도 없었구나. 처음 든 생각이 그거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형이 다쳤다는 말에 안심해 버렸다. 그게 왜 아무 일도 아니야. 데였다잖아. 뒤따라온 걱정이 더 큰 죄책감이 되어 심장에 부딪쳤다.
“아니라니까, 물집도 없잖아.”
괜찮냐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작은 손을 쫙 펴 보이는 형. 다행히도 정말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다. 다행히? 다행인가. 형이 다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인 것인지, 조금은 죄책감을 덜 수 있어서 다행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단지, 갈수록 내 마음이 곪고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
작은 손을 잡았다. 성화 형이 그랬듯 손가락 하나하나를 만지작거리다 조금 더 욕심을 내 그 위의 손바닥을 간지럽혔고, 조금 더 큰 욕심을 내 한 줌도 비는 손목을 거쳐 팔뚝을 쓸었다. 반팔 티 아래 감춰진 살갗에 서툴게 도착한 손이 주춤거리자 또 익숙한 웃음소리가 약을 올렸다.
“이거 꿈이죠?”
“어떨 거 같아?”
웃음소리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들린 적 없던 피터 팬이 몇 년째 들어온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상관없어요.”
다시 들리는 웃음소리를 물어 삼켰다. 꿈이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꿈이어서 상관없었다.
*
“어제 분명 잘 거라고 나가라고 그러시더니.”
“형 어제 몇 시에 잤어요?”
“너 자고 바로.”
“아, 저 자고 바로?”
내가 언제 잠들었는지 왜 알아. 꼭 이렇게 기대하게 만들지. 섭섭한 듯 툴툴거리는 성화 형을 이긴 듯한 마음에 또 들떴다. 나도 이런 내가 미웠다. 성화 형은 아무 생각도 없을 텐데. 나 혼자 질투하고 나 혼자 경쟁했다. 김홍중은 정말이지 너무한 사람이었다. 적나라한 꿈에 뒤척인 탓에 오랜만에 내가 먼저 눈을 떴을 때에도 형은 천장을 향해 누워있었다. 무너뜨리고, 다시 쌓고, 또 무너지고. 어딘가의 돌탑처럼 매일 쌓고 무너지는 기대가 또다시 주제도 모르고 기어올랐다. 나 잠들고 바로 잠들었대. 어쩌면 우린 꿈에서 만난 게 아닐까. 정신 차리니 이미 두 형들은 다른 이야기로 재미있어 보였다. 있지도 않았던 어젯밤 일에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것은 나뿐인가 봐. 돌탑은 또 제멋대로 무너져서 마음 한구석을 때렸다.
*
“형, 사랑해요.”
이미 피터 팬과 형을 구별하지 않고 부르면서도, 다가오는 짙은 향과 건반 소리에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알고서 늘 잘못된 편지를 썼다. 귀여워요, 예뻐요, 좋아해요, 사랑해요. 피터 팬은 제게 하는 말이 아닌 줄 아는지 웃기만 했다. 그냥 거짓말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꿈에서조차 기대는 제멋대로 굴었다.
“당신한테 난 뭐예요?”
“이 세상 다른 무엇보다도 더한 의미지.”
그래, 그랬구나. 언젠가 찾아봤던 피터 팬 영화에 나왔던 대사였다. 어둠이 되어서야 내 것이 되는 피터 팬은 잔인한 면이 있었다. 무너진 집 아래 파묻힌 팅커 벨을 찾아 헤매며 했던 말. 웬디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팅커 벨부터 구하며 꺼낸 말이었다. 웃어야 하나? 피터 팬의 팅커 벨이 된걸? 어쨌든 특별하고 영원한 사이니까. 분명 이게 최선일 텐데 섭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의 첫 키스도 첫사랑도 아니겠지. 평생 이렇게 곁에 있음에도. 악의 없는 솔직함은 사랑을 두렵게 했다. 이제는 꿈마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나는 자격도 없이 형을 원망했다.
*
“진짜 가끔씩 멤버들이 나와요, 멤버들이 제일 많이 나오고.”
“나는 뭐해요?”
“홍중이 형, 홍중이 형이 좀 빈도가 높긴 해요.”
“아 진짜요?”
“그러니까, 멤버가 오래, 오래 있었던 멤버일수록 그런 빈도가 크긴 해요. 꿈에 나오는 게.”
“진짜요? 요즘 같이 자서 그런 거 아녜요?”
“아, 아 그건 아닌 거 같아요.”
형은 원래도 내 꿈에 자주 나왔으니까. 내 치졸하고 습한 감정은 요즘에야 생긴 그런 게 아니었다.
「Tinker with」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