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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샛별

보르도

*트리거 워닝 주의.

 

 

 

“신이시여,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이를 불쌍히 여기고 더럽혀진 영혼을….”

“제발, 제발요…!”

“…보듬어 주시옵소서.”

 

 

아, 이 말투가 아닌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홍중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의 턱 밑으로 칼을 들이밀었다. 이미 팔과 다리가 묶여 바들바들 떨고 있던 남자는 날카로운 칼이 닿자마자 느껴진 죽음의 문턱에 흐느꼈고, 턱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던 눈물이 떨어지기도 전에 칼은 남자의 턱을 뚫고 들어갔다. 단숨에 끝까지 틀어박힌 칼은 여운도 없이 곧장 뽑힌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울컥 피가 흘렀다. 눈을 하얗게 까뒤집은 남자는 입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수도꼭지라도 되는 것처럼 턱 밑으로 새어나오는 피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홍중이 고개를 돌려 언덕 밑을 응시했다. 밤 10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 밑이 너무나 밝고 번잡하다. 신이시여, 이제 막 심판을 받게 된 자의 죄를 엄하게 여기시면서도 이 자의 영혼을 잘 달래주시길 바랍니다. 홍중은 양쪽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를 올렸다. 들을 신이 정말로 있는가에 대해서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지만. 기도를 끝낸 홍중은 곧장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를 곧게 눕힌다. 손목을 묶고 있던 끈을 풀어 양쪽으로 크게 벌려놓으면 꼭 언덕 밑, 붉은 빛들을 내고 있는 것들과 닮았다. 심지어 피로 물들어 붉어지고 있으니, 정말로 다를 게 없다.

 

홍중은 작은 목소리로 멜로디만 겨우 기억나는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피로 젖어가는 남자를 응시했다. 주머니 언저리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내든 홍중은 익숙하게 그 사진을 찍었고, 피에 물들어 짙어지는 십자가는 그렇게 또 한 장 추억을 남긴다.

 

 

“아멘.”

 

 

김홍중은 신을 조롱하듯 중얼거리며 붉은 십자가를 두고 떠난다.

 

 

*

 

 

김홍중은 무난한 사람이다. 초중고 전부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 채로 졸업했으며 대학은 일부러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양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며 친부모님에 대한 소식은 모른다. 돈 많은 양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나 한 번도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사치를 부린 적은 없었고, 성인이 되면서 양부모님 모두 사고로 돌아가신 뒤에는 사망보험금과 남은 유산으로 생활했다. 군대는 공익으로 다녀왔으며 지금까지 여자친구를 사귄 적은 없다. 좋아한다는 여자는 있었으나 홍중이 거절했다. 연애할 생각이 없었기에 홍중은 오는 여자를 막고 살았다.

 

아니, 사실 무난하지 않은 삶인가? 홍중은 스스로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따로 연락하는 친구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남들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친부모에게 당한 학대 후 양부모님의 밑에서 자랐는데, 그마저도 양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시고…. 그래, 아마도 무난하지 않은가 보다. 드라마 소재로도 쓰일 삶이었지만 적어도 김홍중이 생각하기엔 무난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일들을 겪어온 사람이라기에는 너무 덤덤하게 지내니까.

 

홍중은 핸드폰 속 갤러리를 훑었다. 비밀번호까지 걸어놓은 갤러리 속에서 보이는 붉은 십자가들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보던 홍중이 눈을 감았다. 예의상 틀어놓은 TV 속에서는 요새 한참 떠들썩한 연쇄살인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경찰 측은 이번 사건을 단순 범죄가 아닌 종교적 반감으로 일어난 사건이라…. 홍중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로 또박또박 정해진 말들을 읊는 아나운서를 빤히 응시했다. 종교적 반감이라니. TV 속에서는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럴싸한 말들을 주절거렸고, 홍중은 결국 느릿하게 일어나 베란다 쪽으로 다가섰다. 불이 꺼져 어두운 하늘과는 달리 건물들은 저마다 빛을 내 거리를 밝힌다. 그 중간에서도 가장 크게 빛이 나는 붉은색 십자가가 홍중의 시야를 붙잡아 흥미를 유발한다.

 

 

“예쁘네.”

 

 

홍중은 십자가를 보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한 달을 정리해가며 계획을 짰고 일주일에 걸쳐 동선을 수정했다. 매주 수요일 밤 11시 30분, 지친 티를 내며 집으로 들어가던 30대 중반 아저씨가 첫 시작이었다. 홍중보다 덩치도 크고 키도 컸으나 그 아저씨는 목에 둘러진 밧줄에 허둥대며 밀어내지 못했고, 홍중은 그런 남자를 깊은 골목으로 데려가 양쪽 손목을 그었다. 이미 밧줄로 질식한 남자를 십자가 모양으로 눕혀놓고 손목에서 울컥 새어나오는 피가 퍼지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그 때 처음 느낀 감정이…, 희열이었던 것 같다. 피로 물들어가는 십자가가 김홍중의 과거를 들추며 심박수를 높였다.

 

그 다음은 50대 초반, 30대 후반, 40대 초반. 굳이 공통점을 얘기하자면 전부 기독교라는 점과 나이가 좀 있는 남자라는 점. 그 공통점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거의 기억들이 이제는 우습다.

 

홍중의 친아버지는 기독교에 몰두해 신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교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항상 하루가 끝나기 전에 예수의 사진을 두고 한 시간을 넘게 기도했다. 홍중은 신을 믿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기에 항상 교회에 따라가 저린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기도했다. 하루는 열이 너무 올라 얼굴이 붉어진 채 숨을 헐떡였는데, 홍중의 아버지는 그것이 전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라며 아픈 홍중을 억지로 끌고 가 기도를 시켰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으며 신의 힘을 믿었어야 됐다.

 

홍중이 처음 친아버지를 벗어날 수 있었을 때, 홍중은 처음 죽음의 코앞을 볼 수 있었다. 식전 기도를 드릴 때 어린 홍중이 일찍 눈을 뜨고 산만하게 굴었다는 것을 시작으로 홍중의 아버지는 홍중에게 믿음이 없다며 손가락질을 했고, 울컥한 어린 홍중이 어차피 기도해도 들어주는 신이 없다고 말한 것이 불을 지폈다.

 

 

“네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주먹이 크게 들렸다 작은 몸뚱이를 내리칠 때마다 굵은 목소리가 뚝뚝 끊기며 호통을 쳤다. 자기 몸무게의 반도 안 되는 아들을 노리는 아버지의 손길이라기엔 매서웠고, 홍중은 코피를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전부였다. 믿음이 부족했느냐 물으면 솔직히 부족했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정말로 신이 있고 홍중의 기도를 들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플 때 병원에 가고 다리가 저릴 정도로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며 더 다정한 아버지에게 어리광을 부려볼 수도 있었을 터였다.

 

딱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커다란 발에 밟혀 팔이 부러지고 왼쪽 다리에 금이 갔다. 볼을 잘못 맞아 어금니 하나가 빠졌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치였고, 안쪽 볼이 이에 찢어져 피가 흘렀다. 홍중은 조금만 더 맞았다간 자신이 죽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가기에는 홍중이 너무 작고 힘이 없었기에 밀려나지도 않을 터였고, 그렇다고 틈을 노려 집 밖으로 나가기엔 금이 간 다리를 절뚝이느라 금방 잡힐 것 같았다.

 

어린 김홍중은 단호했으며 자신을 지킬 생각이 강했다. 망할 신이 지켜주지 못하니 자신이라도 나서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가 본격적인 폭력을 위해 왼쪽 손목에 두르고 있던 시계를 푸는 사이 부엌으로 뛰어가 싱크대에 놓인 식칼을 집었다. 그리고는 도망가는 아들을 잡기 위해 돌아본 아버지의 배를 찔렀다. 칼은 무디지 않았기에 살덩이를 갈랐으며 그 비좁은 틈으로 붉은 피가 새어나와 아버지의 옷을 적셨다. 다급한 기침과 함께 홍중의 아버지는 피를 토했고, 놀란 홍중이 손을 덜덜 떠는 사이 몸을 파르르 떨며 쿠당탕 쓰러졌다. 저 무거운 어른을 어딘가에 숨길 수도 없었던 홍중은 119 대신 112를 불러 사실을 고했다. 아버지가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근데 너무 살고 싶어서…. 어린 목소리는 곧장 울음으로 변해 경찰을 불렀다.

 

홍중은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홍중의 집에 도착했을 때, 홍중의 아버지는 이미 피를 흘린 채 죽어있었고 홍중은 입 안에서 나는 피가 멈추지 않아 수건을 입 안 가득 물고 있었다. 부러진 팔을 간신히 붙잡고 다리를 절뚝이는 아이의 얼굴이나 옷은 코피로 엉망이 된 채여서, 그 현장을 목격한 어른들은 이미 죽은 홍중의 아버지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아버지가 칼을 들고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이미 너무 많이 맞아서 아프고 살려달라고 빌었는데 아버지가 자꾸 칼을 들고 쫓아와서 도망을 다니다가 발버둥을 쳤는데…, 아버지가 칼에 찔렸어요.”

 

 

반은 사실이었지만 반은 거짓인 진술은 홍중에게 유리했다. 식칼 손잡이는 이미 옷으로 전부 닦았고 물을 묻혔으며 시체의 손을 끌어다 쥐게 만들었다. 어린 홍중의 지문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홍중이 어리다는 점은 유리하게 적용했다. 내내 침묵하던 옆집에서 살려달라는 아이의 비명과 성인 남성의 호통을 들었다는 점까지 엮어 홍중은 죄 하나 없이 시설 좋은 보육원에 갈 수 있었으며, 남들의 동정을 받으며 무난하게 지내다 무교인 양부모님에게 입양 됐다.

 

김홍중은 애초에 신을 싫어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그렇게 미치광이처럼 만든 종교를 싫어했으며 살려달라는 기도를 빌어도 도와주지 않던 신을 싫어했다. 어두운 밤, 밖에만 나가면 보이는 붉은 십자가들에 구역질이 났으나 홍중은 성인이 될 때까지 조용히 지냈다. 군대를 다녀오고 양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도 아주 조용히. 더는 본인이 신경 쓸 인물이 없다는 것을 안 홍중은 신에 대한 복수를 하기 시작했다.

 

신을 조롱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사람을 죽이기 전 신께 기도를 올렸으며 피로 물든 사람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었다. 남들이 미친 것처럼 돈을 써가며 모시는 그 신이 정말로 있는 거라면 자신의 행동을 보고 열이나 받았으면 해서 피로 물든 십자가를 두고 다시 한 번 기도했다. 종교 혐오로 벌어진 사건이라는 뉴스에 신을 믿는 자들은 저마다 사탄이 내려온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댔고, 신성 모독이라는 점과 연쇄 살인이라는 점이 맞물려 화제성이 컸다. 홍중은 그 신성 모독이라는 말이 만족스러웠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에 붙잡혀 억지로 했던 기도 따위를 잊을 수 없었기에 그런 자신이 지금 신을 기만하며 신성 모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어차피 신 따위는 없는 거라고, 멍청한 자들을 향해 혀를 두르는 것이 좋았는데.

 

 

“신이시여,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영혼을…,”

“너였구나.”

“…….”

 

 

갑작스럽게 끼어든 목소리에 표정을 굳힌 홍중이 고개를 들었다. 홍중의 발 언저리에는 평소와 같이 피로 젖어가는 남자가 십자가 형태를 한 채 죽어가는 중이었고, 주변은 사람이 없는 폐허 사이였다. 목격자가 있으면 죽이면 그만이다. 홍중은 남자의 피가 묻은 칼을 꾹 쥐었지만 당장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것은 담벼락 위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다리를 까딱이는 어린 남자였다. 전부 다 안다는 것처럼 슬며시 웃음을 짓고 있는 얄쌍한 눈매나 깊게 패인 보조개 따위가 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홍중이 의아함을 느끼는 사이 그 남자의 등 뒤로 검은 날개가 크게 펄럭였다.

 

남자는 본인 스스로를 루시퍼라고 칭했다. 말이 안 된다며 코웃음을 치기에는 남자의 등 뒤로 보이는 검은 날개가 현실적이었고, 누군가의 장난이라기엔 상황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홍중은 볼 언저리에 튄 피를 소매로 닦아내고는 삐딱하게 서 남자를 훑었다. 날개만 아니었으면 그냥 일반인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인 그 남자는 어느새 담벼락에서 내려와 홍중이 만든 십자가 위를 밟고 올라섰다. 그 무게에 짓눌릴 거라 생각했던 시체는 옷깃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신도 안 믿으면서 기도는 왜 해?”

“…….”

“설마 지금 신을 엿 먹이고 있는 거야?”

 

 

홍중의 침묵을 알아들은 남자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고, 굳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홍중은 정정하지 않았다. 엿을 먹이고 있다기보다는…, 뭐, 비슷한가. 홍중은 가까이 다가온 남자 뒤로 펄럭이는 날개를 훑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처럼 살랑이며 움직이는 날개가 검은색이 아니었다면 꼭 천사의 날개라고 착각할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아니, 비록 타락했다고 하지만 일단 루시퍼도 천사는 맞지 않나. 홍중은 다시금 시선을 옮겨 남자와 눈을 마주했다. 온전히 홍중만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가 어울린다.

 

너 마음에 든다. 남자의 등 뒤로 펼쳐진 날개가 모습을 감추며 사라짐과 동시에 붉은 눈동자가 까맣게 물들었다.

 

중학교 시절, 보조개가 있었던 학우를 두고 선생님이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지독한 기독교였던 그 선생님은 학우의 얕은 보조개를 보며 신의 사랑의 증거물이라는 소리를 했다. 보조개는 신이 그 아이를 사랑해서 생긴 것이라고, 신이 그 아이의 볼을 콕 찔러 생긴 사랑스러움의 증거라고. 보조개가 없는 홍중은 가뜩이나 신을 싫어했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당장 자신이 믿고 싶은 것에만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이는 거라고.

 

그는 보조개가 깊었다. 홍중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봐온 사람들 중에 제일 깊었으며 제일 아름다웠다. 정말로 신이 사랑한 아이들에게 남겨주는 증거라는 말을, 홍중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루시퍼는 본래 신의 곁을 지키던 천사였으니까. 신의 은총을 한 몸에 받았으며 천계에 있을 때 신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던 존재라고, 인터넷에서는 그렇게들 떠들었다. 비록 오만에 빠져 신의 자리를 노린 탓에 추방당한 타락천사라고 불렸지만 뭐가 됐든 그는 정말 신에게 사랑을 받은 자임은 맞는 말이었다.

 

 

“샛별…,”

“뭐?”

“샛별이라고 불러도 돼?”

 

 

그는 우습다는 듯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홍중을 응시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스스로를 루시퍼라 칭하는 그를 부를 적당한 말이 없었기에 홍중이 생각해낸 것이었다. 루시퍼라는 이름에는 새벽의 샛별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이 떠올라서 꺼낸 말이었지만 홍중은 제법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날개를 꺼낼 때 드러나는 붉은 눈동자가 꼭 새벽이 끝나갈 무렵 동이 트는 해와 같았기에, 홍중은 스스로 정한 호칭이 만족스러웠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했으나 인간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신을 조롱하는 홍중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까지 따라온 그는 겉으로는 인간과 같은 모양새를 했지만 밥을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홍중의 스마트폰은 다룰 줄 알았는데, 그는 갤러리 속 나열된 붉은 십자가들을 차례대로 보고는 아이처럼 방긋 웃어보였다. 난 네가 마음에 들어. 요새 계속 여기저기서 추궁하는 바람에 그냥 진범 얼굴이나 볼까 했던 건데, 나랑 이렇게까지 마음 맞는 인간일 줄은 몰랐지. 홍중보다 더 어린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뱉는 말들은 전부 홍중을 낮게 잡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홍중은 문득 며칠 전 뉴스에서 봤던 사탄 어쩌구 하는 말이 떠올랐지만 구태여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뿐이라 생각했다.

 

홍중은 묻지도 않은 자신의 과거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어릴 적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도를 드렸던 일이나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았던 일, 결국에는 칼로 아버지의 배를 찔러 죽였다는 것까지 술술 뱉어냈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 어딘가 신이 난 표정을 한 채로 내내 홍중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얘기가 끝나자마자 홍중을 껴안았다. 애초에 위로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어딘가 붕 뜬 목소리로 너 재밌게 살아왔구나! 하고 말하는 그를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홍중은 그가 좋았다.

 

 

“샛별, 신은 진짜로 있을까.”

“너 나를 봤으면서도 잘도 그런 질문을 하는구나.”

“난 없다고 생각했어. 어차피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는 신이라면 그건 없는 거라고, 가장 중요할 때 의지해도 소용이 없다면 그냥 무(無)의 존재라고.”

“그럼 난 뭐라고 생각해?”

“나한테 샛별은…, 신 같아.”

 

 

신? 그는 코웃음을 치며 홍중을 응시했다. 소파에 몸을 반쯤 뉘인 채로 삐딱하게 앉은 그와는 달리 홍중은 소파 끝에 반듯하게 앉아 TV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홍중의 시선이 엇나가고 있는 것이 불만인 듯 홍중의 허벅지 위로 양쪽 다리를 꼬아 올렸다. 신은 없는 것 같다면서. 그는 방금 전에 홍중이 중얼거린 말을 콕 집어 되물었다. 신은 없는 것 같다면서 자신을 신으로 보는 홍중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고, 홍중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남들이 믿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겠지만, 내가 믿는 신은 너니까. 나는 샛별을 볼 수 있고 들을 수도 있어. 그리고 만질 수도 있잖아. 나한테 신은…, 너 말고는 없는 것 같아.”

 

 

루시퍼를, 그것도 신에게 반기를 들었다 추방당한 타락한 천사를 신으로 삼는 인간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시선이 그를 눈에 담는다. 고동색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 완전히 누운 채 눈을 깜빡였다. 그의 눈꺼풀이 상하로 움직일 때마다 팔랑거리는 속눈썹이 홍중의 고요한 샘에 큰 파도를 만들어낸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물어볼 수 없는 홍중은 그저 그 덤덤한 얼굴을 응시할 뿐이었고, 애초에 잠을 자지 않는 그는 금세 눈꺼풀을 떠 천장을 응시했다.

 

 

“좋아.”

“…….”

“내가 너의 신이 되면 되겠다. 옆에 두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래.”

“나는 그 진짜 신이랑은 다르니까 널 도와줄게.”

 

 

그를 신이라 생각하고 믿기로 했지만 홍중은 사실 흘러가는 말이라 생각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홍중이 새로운 타겟을 찾을 때에도, 적당한 장소를 고를 때에도, 밤을 새가며 계획을 준비할 때에도 그는 옆에서 지켜만 볼 뿐 그 어떠한 도움 하나 주지 않았기에 한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걸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던 홍중은 여전히 자신이 하던 그대로 타겟을 골랐으며 오랜 시간에 거쳐 계획을 준비했다. 시간이 지나도 범인을 잡았다는 말이 없자 뉴스나 기사에서는 불안감을 표현했고, 이전 피해자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경고문을 보냈다.

 

홍중이 막 남자의 목을 칼로 그었을 때, 운 나쁘게도 목격자가 생겼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대학생은 칼을 든 홍중과 밑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자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고, 홍중이 잡을 새도 없이 뛰어갔다. 노출된 얼굴은 중요치 않았다. 옆 담벼락에서는 날개로 옅은 바람을 불던 그가 지켜보고 있었고, 홍중은 흰자만 드러낸 채 죽어가는 남자의 몸을 십자가로 정리했다.

 

이상하게 그 날은 순탄치 않았던 것 같다. 남자를 잡기 직전 칼을 떨어트려 들켰으며, 어찌 힘으로 제압해 데리고 들어간 골목 끝에 교회가 있었다. 홍중을 보며 겁에 질린 채 덜덜 떨며 살려달라고 빌기만 했던 이전 십자가들과는 달리 새로운 남자는 홍중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그런 그를 눕히느라 불필요한 상처를 내야만 했다. 애초에 그 시작부터가 무언가 안 맞았었나. 평소라면 죽이기 직전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했을 기도조차 잊어버린 홍중은 곧장 남자의 목을 그었고, 타이밍 나쁘게 들킨 것이었다. 시체의 모양새를 맞춘 뒤 곧장 자리를 뜨려던 홍중은 골목의 끝에서 아까 그 대학생과 같이 뛰어오는 경찰을 발견했다.

 

 

“검은색 모자 쓰신 남성분, 당장 멈추세요!”

 

 

운이 좋다고도,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근처에 있던 경찰이 오는 바람에 쫓기는 신세가 된 홍중은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테이저건을 피했지만 그 여파로 달려오던 자전거와 부딪혔다. 갈비뼈에 금이라도 간 듯 고통이 밀려왔지만 여기서 잡힐 수 없다는 생각에 옆구리를 쥔 채 뛰었고, 뒤이어 한강을 아래에 둔 대교로 들어섰다.

 

워낙 매스컴을 많이 탄 사건이었기에 금세 경찰차들이 따라 붙었고, 홍중은 자신을 둘러싼 경찰들을 마주한 채 난간에 바짝 몸을 붙였다. 경찰들은 저마다 난간에 붙은 홍중을 경계하며 설득하려 했고, 홍중은 어느새 자신이 기댄 난간에 앉아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도와줄게. 경찰차로 통행이 막힌 와중에도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상황에서, 홍중은 귓가에 선명히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거친 숨을 헐떡였다. 이미 늦었어. 홍중은 가쁜 숨을 내쉴 때마다 뻐근하게 아파오는 갈비뼈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숨을 정리했지만 이미 거칠어진 숨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뒤로 뛰어내리면 돼.”

“그럼 그게 끝이 될 텐데.”

 

 

넌 이런 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 그의 검은 날개가 크게 펄럭임과 동시에 홍중의 머리카락이 살랑였다. 남들은 단순히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전부 그가 만들어냄을 아는 것은 홍중밖에 없었고, 당장 그를 볼 수 있는 것도 홍중이 전부였다. 이런 곳에서 계속 살고 싶냐고? 홍중은 허를 찌른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구태여 구질구질하게 명줄을 이어가고 싶냐 물어본다면 당연히 아니었다. 애초에 본인이 죽는다고 해서 슬퍼할 사람은 없었고, 당장 한강에 뛰어들어 죽는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홍중은 이번 삶에 미련이 없다. 그럼 왜 죽기 살기로 경찰을 피해 도망을 쳤지? 스스로에게 질문한 홍중은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고, 그 질문은 홍중의 이마를 꾹 밀었다.

 

 

“내가 너를 도와줄게.”

“…….”

“네가 저 강에 빠져 죽는다고 해도, 내가 너를 거둘 테니 너는 새로운 삶을 사는 거야.”

 

 

어느새 난간에서 내려온 그가 홍중의 앞에 선다. 당장 홍중을 잡기 위해 둘러싼 경찰들은 저마다 경계하고 있겠지만 홍중은 자신의 앞에 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볼 수 없었다. 커다랗게 펼쳐진 날개가 홍중의 시야를 가리고, 그의 가느다란 손이 뻗어와 홍중의 목에 둘러진다.

 

샛별, 나는 너를 사랑하는 걸까. 도시의 소음 속에 묻힌 홍중의 목소리가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그가 날개를 꺼낼 때면 드러나는 진하고 붉은 눈동자색이 홍중의 마음 한 구석을 일렁이게 만든다. 그는 혼잣말과도 같은 홍중의 질문에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고, 그 대신 거친 숨을 헐떡이는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꾹 눌러 찍었다. 맞닿은 입술에 자연스럽게 그 다음을 생각한 홍중이 옆구리를 쥐고 있던 손을 옮겨 그의 허리에 감으려 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길지 않은 가벼운 입맞춤에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는 홍중의 아랫입술을 날카로운 송곳니로 깨물었다. 고통은 짧았으나 깨물린 입술에서 피가 새어나온다. 혀는 섞이지 않았다. 새어나오는 피를 할짝인 그가 쪽, 가벼운 소리를 내며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뛰어. 뛰어내려도 내가 네 영혼을 거둘 테니 너는 당장 뛰어내려.

 

이런 걸 두고 악마한테 홀린다고 하는 건가. 홍중은 자신을 바라보는 저 얼굴을 이기지 못한다. 그와 자신의 입술이 맞닿고 자비 없는 날카로운 이가 깨물어 저의 피가 그의 혀에 닿은 그 순간부터 홍중은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걸음을 주춤하며 점점 다가오는 경찰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홍중은 자신의 앞에 서서 폭 패인 보조개를 만들며 웃는 그를 한 번 보고, 살짝 고개를 틀어 난간을 짚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한동안 생명의 다리랍시고 떠들었던 언론들이 떠올랐다. 홍중은 그 문구가 그와, 또 자신과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야, 잡아!”

 

 

너를 보고 있을 때. 홍중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경찰들 대신 그를 응시했다. 아아, 나는 너를 사랑하나보다. 너의 붉은 눈동자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이 동했던 이유는 단순히 내가 악마에게 홀려서가 아니라, 너를 마음에 담고 있어서 그랬던 거구나. 난간을 잡고 있던 홍중이 몸을 뒤로 기댔고, 그런 홍중을 돕듯 거센 바람이 불었다.

 

홍중은 다리 밑으로 추락하고, 그는 난간 위에 올라 그런 홍중을 바라본다. 자신의 영혼을 거두겠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떨어지기 직전 그와 나누었던 짧은 입맞춤과 입술을 깨물고 피를 핥았던 그 행동이 일종의 거래와도 비슷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늘로 오르리라. 신의 별들 위로 나의 왕좌를 세우고 북녘 끝 신들의 모임이 있는 산 위에 좌정하리라.

 

홍중은 그가 추방당하기 직전 가졌다던 욕망을 떠올렸다. 만약 내가 죽어 샛별, 너의 곁에 서게 된다면 그 꿈을 내가 이루게 해주리라.

 

웅크린 몸뚱이가 큰 파도를 만들며 수면 속으로 파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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