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존 밀턴의 ‘실낙원’ 과는 무관한 내용입니다.
그거 들었어? 올해는 오씨네 진우래! 오씨가 많이 놀랐겠구만-. 그래 쓰러져서 병원 갔다 들었네. 종호는 아저씨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들도 종호에게 인사를 했고 서로 웃었다. 종호는 그들을 지나치고서 바로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선 앞에서 종호를 기다리며 쪼그려 앉아있는 민기를 향해 달려갔다. 형 많이 기다렸어요? 하며 민기를 안았다. 민기는 실실 웃으며 아니라며 종호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 고작 몇 시간 못 본 것 가지고 민기는 엄살을 부렸다. 종호는 빨리 들어가자며 민기를 부추겼다. 둘이 들어간 후에도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런 이곳은 ‘낙원‘이라고 불렀다.
실낙원: Paradise Lost
블엥
“형 일어나요-.”
“어엉⋯.”
종호는 아침부터 민기의 집에 들어와 민기를 깨웠다. 민기는 무방비 상태로 자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었다. 내가 옷 입구 자라고 했잖아요! 종호는 이불로 덮여 있는 민기의 엉덩이를 아프지 않게 살짝 때렸다. 종호가 기도복을 입은 것을 보니 아침부터 기도가 있는 모양이었다. 민기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종호에게 끌려 이불에서 나왔다. 민기의 옷들을 꺼내 대충 민기의 등판 위에 던지는 종호였다.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 빨리 입어요! 종호의 호통에 민기는 뭉그적대면서 옷에 제 팔을 끼워 넣었다. 양치까지 하라며 종호가 화장실에 민기를 밀어 넣자 민기는 투덜대면서 양치도구를 꺼내 양치를 했다. 머리는 감기 귀찮다고 양치 거품까지 내며 말했지만 종호는 고개를 저으며 안된다고 했다. 못 말린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민기는 거품을 뱉고 입 안을 헹구었다. 머리까지 감고 탈탈 털고 나오자마자 제 볼을 부여잡아 까치발까지 들고 뽀뽀를 해대는 종호에 민기는 볼이 붉어졌다. ‘해야 할 것을 하면 보상을 받는다.’ 는 하늘의 말은 사실이었는지 민기는 또 다시 하늘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다. 제 앞에서 실실 웃는 종호가 너무 예뻐 보였다. 둘은 나가기 전에 두 손을 부여잡고 기도를 했다. 오늘도 낙원에 사는 이들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소서. 민기는 기도가 끝나자 종호의 이마에 입을 짧게 맞추고 집 문을 열었다.
종호는 제사장인 자신의 아버지의 옆에 서서 기도를 했다. 다들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낙원에서 종호의 일은 별게 아니었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제사장의 아들로써 의무적으로 타락한 이들을 데리고 낙원의 끝으로 가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힘이 셌던 종호가 하는 일은 정말 힘만 쓰는 일이었다. 어쩌다보면 자기는 타락한 것이 아니라며 울고 불며 안 가려고 악을 쓰는 이가 있는데 그런 사람을 끌고 낙원의 끝으로 데려갈 자는 제사장 집안에선 종호 밖에 없었다. 종호는 이런 일이 익숙해졌고 당연시했다. 허나 커가며 그런 짓에 죄책감이 들 때가 제일 힘들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이가 제물이 되는 것, 그것은 종호의 가슴을 아예 후벼 팠다. 앞에서 아저씨들이 말했던 것과 같이 이번 달은 오씨네 아저씨의 막내아들 진우였다. 진우는 이틀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종호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미안했다. 진우는 흔히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르는 종호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낙원에서는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곤 했다. 하루아침에 머리색이 붉게 물든다면 그것은 타락의 증표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타락이라 불렀고, 그것은 제물로 바쳐졌다. 타락을 하고 보름 후에 낙원의 끝으로 가 낙원에 몸을 바치면 하늘은 그를 진실의 낙원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정말 믿는지 종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행해왔다. 종호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깨닫기도 전에 제물들을 낙원의 끝으로 데려갔다. 제물은 대부분 남녀 구분 없이 18살에서 22살 사이의 청춘들이었다.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그 나이대의 남녀가 타락했다. 물론 종호는 제외였다. 제사장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는 의미였기에 종호는 타락하여 제물이 될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 종호는 안심하며 살았지만 제 소중한 친구들을 잃는다는 것이 가슴이 찢어졌다. 물론 제물이 되지 않고 22살을 지나가는 이도 있었지만 이젠 거의 없었다.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타락한 자가 나왔으니 종호는 매번 가슴이 찢어졌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어야하는 제 친구들이 너무 안타까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것 또한 하늘의 뜻이었다. 벌써 종호의 친한 친구들이나 동생들이 제물로 바쳐졌다. 그리고 진우가 낙원의 끝으로 가는 날이 바로 내일이었다.
진우의 손을 잡고 낙원의 끝으로 가는 길엔 종호가 펑펑 울었다. 제물을 바치는 날마다 해는 보이지 않았고 먹구름이 그를 반겼다. 그 사이에서 진우는 붉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진우의 손을 꼭 잡고 깍지까지 낀 종호는 진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생일도 비슷하여 민기와 함께 매일매일 같이 놀았는데, 그랬던 애가 지금 제물로 바쳐진다니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진우가 낙원의 끝에서 하늘의 낙원으로 가기 전 뒤돌아 종호를 쳐다봤다. 종호는 끝까지 울음을 참으려했으나 참지 못하고 다시 울어버렸다. 종호가 우는 것을 보고 진우는 한숨을 내쉬더니 하늘의 낙원으로 뛰어내렸다. 그렇게 종호는 또 가슴에 못이 박혔다. 이것이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닌 무고한 죽음인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
타락하는 이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나이대가 18살부터 22살이었지만, 타락하는 것은 정말 나이가 상관이 없었다. 어쩔 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께서 제물로 바쳐지는 경우도 있었고, 정말 애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적은 확률이었다. 제 친구들을 인도할 때마다 종호는 죄책감이 늘어만 갔다. 저와 친한 이들을 몇 명이나 보냈는지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모두 떠나보낸 이제 걱정거리는 제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민기였다. 철없게 사과를 앙 하고 먹는 모습이 딱 민기였다. 종호는 민기의 볼을 한번 쓸었다. 푸석푸석한 것이 로션을 바르지 않은 모양이다. 형 내가 로션 바르라고 했잖아요! 민기는 실실 웃었다. 미안- 하고 사과하는 모습조차 어릴 적 민기와 똑같았다. 종호는 그 모습을 보고 더 불안해졌다.
"형 올해 몇살이에요?"
"나? 22살!"
종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미적지근했던 가을도 가고, 차가운 겨울도 다가오니 종호는 한시름 놨다. 4개월만 버티자, 4개월만. 민기는 왜 그러냐며 종호의 손을 잡았다. 요즘 따라 느낌이 이상해서요, 자꾸 불안해서. 진우가 죽고서부터 종호는 매번 불안에 떨었다. 저번 달에는 빨간 지붕에 사는 18살 제윤이가 타락했다. 종호는 제윤이 떨어지는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민기는 일어나 종호의 옆에 앉아 종호는 안아주었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건조한 어투에 종호는 자신도 민기를 안았다. 너무 불안했다, 이런 사람을 잃게 되는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키스해줘요. 종호의 말에 민기는 바로 입을 맞췄다.
*
제물을 바치면 낙원은 한동안 평화로웠다. 제물이 지상낙원에 머무는 보름 동안은 낙원도 시끄러웠다. 빨리 보름이 지나가길 바라는 이들과 제물로 변한 그의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낙원을 가득 메웠는데, 이젠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종호는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지났다.
“종호 뭐해?”
“형 액자 닦아주고 있었죠.”
“이제 여기 오면 안 돼?”
민기는 아까부터 종호의 뒤에서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종호는 입김을 불어 액자를 닦다가 피식하더니 민기에게 안겼다. 종호는 민기네 집에서 거의 살았다. 반동거하는 수준이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둘은 사랑을 싹 틔웠다. 다들 이 둘이 같이 다니는 게 친해서인 줄만 알기에 둘은 편하게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민기네 집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방해는 더더욱 없었다. 둘은 주말마다 사랑을 나눴다. 종호와 민기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입맞춤을 끝으로 종호는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민기가 옷을 입고 부엌으로 가 물을 가지러 갔을 때 종호는 실실 웃었다. 제 앞에 놓인 민기의 어릴 적 사진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엔 자신도 서있었다. 두 손 꼭 잡은 모습이 지금과 똑같았다.
“형 이거 봐, 우리 진짜 똑같이 생겼다.”
종호의 위에 겹쳐 누운 민기는 종호가 들고 있는 사진을 같이 봤다. 종호는 저때도 귀여웠네-. 민기의 낯부끄러운 말에 종호는 이불 속으로 얼굴을 감췄다. 민기는 그거에 재미 들린 건지 종호 어디 있냐고 킥킥 웃어댔다. 종호는 손만 빼서 민기의 손을 잡았다. 민기는 종호의 손을 붙잡고 여기저기 입을 맞췄다. 종호의 손 모든 곳에 민기의 입술이 닿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종호는 이불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이 시간이 여전하길 바랐다.
*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낙원의 분위기는 평화로웠던 분위기는 어디가고, 제물을 바쳤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되었다. 종호는 느낌상 타락한 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민기의 집에서 지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민기의 옆에 딱 붙어서 살았다. 민기는 그럴 일 없다면서 종호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종호는 불안하다며 기도 시간을 제외한 시간엔 민기에게 딱 달라붙어있었다. 이제 3개월만 버티면 됐다. 3개월만 버티면 민기도 타락 대상에서 제외였다. 허나 이제 낙원엔 그 나이 대의 사람이 민기와 저 밖에 없었다.
타락하기 전 증상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심한 감기와는 다른 증상이었으나 티가 안 나서 다들 쉬쉬하며 넘어갔다. 허나 종호는 딱 알 수 있었다. 저게 감기인지 아님 타락인지 가려낼 수 있는 게 종호였다. 그래서 더 불안했고 무서웠다. 저와 친분이 있는 이들이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종호는 불안에 떨었다. 진우가 그랬다. 머리를 부여잡았을 때 종호는 공포에 물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진우를 떠나보낸 것도 벌써 두 달이었다. 종호는 진우가 떨어지던 것이 생생한지 아직도 낙원의 끝으로 향하곤 했다. 민기는 그런 종호를 안쓰럽게 생각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이 어두웠고 구름도 얕게 떠있었다. 불안한 징조였다.
전과 똑같이 사랑을 나눈 둘은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어두운 방 안에 종호는 등을 보이고 민기는 그를 안고 누워있었다. 전구에서 나오는 작은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이 방에서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민기였다.
“종호야, 난 너한테 뭐야?”
“새삼스럽게 뭐에요.”
아 궁금해 말해줘! 민기는 갑자기 되지도 않는 떼를 썼다. 종호는 또 진지한 생각을 하고 입을 열었다. 형은 저한테 낙원이죠. 민기는 종호의 답을 듣고 웃더니 종호의 귓바퀴에 입을 맞췄다. 그럼 종호도 내 낙원하자. 종호는 유치한 답변에 푸스스 웃었다. 그리고 민기는 한숨을 쉬었다. 왜 한숨 쉬냐는 물음을 묻기도 전에 민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종호야, 형 할 말 있는데."
"뭔데요?"
"⋯나 요즘 머리가 아파."
종호의 몸이 굳었다. 민기가 종호를 더 세게 안았다. 말투부터 행동까지 모든 걸 다 포기한 사람처럼 굴었다. 종호도 놀란 눈치였다. 제 가슴 앞에 놓여있는 민기의 큰 두 손을 쥐어 잡았다. 너무 차가웠다. 두통, 두통이겠죠. 형 요즘 차게 다녔잖아요. 종호는 애써 민기를 말로 둘렀다. 그렇지만 민기는 자신이 어떠한 상황인지를 아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종호는 뒤돌아 민기를 안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민기를 안았다는 말이다. 형 벌 받나봐 종호야. 종호는 민기의 어깨를 눈물로 적시었다. 종호는 다시는 아끼는 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 민기는 감정을 추슬렀다. 훌쩍임이 줄어들었고 민기는 종호의 등을 매만졌다. 오히려 종호가 민기를 토닥여야하는 상황이었지만 민기는 계속해서 종호를 토닥였다. ⋯그래서 종호야, 나 괜찮을까? 민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종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며칠 뒤, 민기는 타락했다. 정말 제물로 바쳐지는 이가 민기였다. 송민기의 이름을 어쩔 수 없이 부르게 된 종호는 제 앞에 선 민기를 올려다봤다.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민기에 종호도 살짝 웃어주었다. 그 웃음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민기의 머리가 붉었다. 제사장인 종호의 아버지는 민기를 밧줄로 묶고서 종호에게 떠넘겼다. 종호는 민기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야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걸었다. 종호는 민기를 그 안까지 데려다주었다. 민기의 손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종호에 민기가 종호의 손을 떼었다. 형 괜찮아-, 하는 목소리가 물기가 있었다. 종호는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민기가 있는 방의 문을 닫아야했다. 종호 이따며칠 뒤에 보자-. 민기의 마지막 인사에 종호는 잠금장치를 걸고 주저앉았다. 끝내 엉엉 우는 종호였다.
종호는 민기를 꺼내려 애썼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민기가 타락했을 리가 없다며 울고 불며 말하기도 했고 먹을 것이라도 주게 해달라며 빌었다. 하지만 그 부탁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보름은 점점 가고 있었다. 종호가 민기를 낙원의 끝으로 데려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종호는 민기가 없는 삶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몸소 겪고 있자니 그것은 정말 지옥에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종호는 낙원을 잃었다. 민기가 없는 이 곳은 종호에겐 실낙원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보름이 다 가고 있었다. 종호는 웅크려 있다가 뭔갈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벌써 내일이었다, 민기가 제물로 바쳐지는 날이.
*
종호는 굳게 닫혔던 문을 열었다. 핼쑥해진 민기가 있었다. 종호는 조용히 그 문을 닫았다. 오늘이야? 민기의 물음에 종호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기는 체념한 듯 웃었다. 오늘은 민기가 낙원의 끝으로 가는 날이었다. 종호는 민기의 손목을 바라봤다. 밧줄 때문에 멍이 든 손목이 종호의 가슴을 찔렀다. 종호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빨리 가야했다.
"종호야 빨리 가자."
"⋯형, 제 말 잘 들어요."
종호는 민기에게 묶여있던 밧줄을 풀었다. 민기는 의아한 표정으로 종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민기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여기 나가면 뒷산에서 시내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있어요, 그 길 따라서 시내 터미널 찾고 버스 타고 도망쳐요. 형 할 수 있죠? 종호의 말에 민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 시내 많이 가봤지? 몇 푼 안되는 돈을 민기의 큰 손에 꼭 쥐어주는 종호였다.
"종호야 안 돼, 너는 어떡하게."
"난 괜찮아요, 형만 나가."
"안 돼, 그러면 나 안 갈 거야."
빨리 가요 형, 제발. 종호는 민기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부탁이라며 제발 도망치라고 우는 종호의 모습은 안쓰러웠고 불쌍했다. 민기는 팔을 들어 종호의 두 뺨을 감쌌다. 종호는 더 서럽게 울었다. 민기는 부드럽게 종호를 감싸 안았다. 입을 짧게 맞춘 둘은 서로를 응시했다. 종호는 저가 두르고 있던 베이지색 목도리를 민기에게 둘렀다. 지금 아무도 없어요, 다들 그 절벽에 가있어. 종호는 그 큰 문을 열고 민기에게 길을 알려줬다.
“난 형 잃기 싫어요.”
“⋯형이 빨리 올게.”
“그래, 빨리 와요. 나 바깥 구경 해보고 싶어.”
민기는 마지막으로 종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결혼도 꼭 하자. 종호는 민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놨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빨리 가요. 민기는 끝까지 종호를 쳐다봤다. 종호는 달리는 민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눈물을 제 손목으로 닦았다. 그리곤 낙원의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민기는 어디 있냐는 내용이었다. 종호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낙원의 끝에 도달하려했다. 사람들은 다 말렸지만 종호는 달리기 하듯 사람들을 가르며 뛰었다. 낙원의 끝에서 멈춰 섰고 종호는 그대로 추락했다. 종호는 나태했고, 민기를 잃었고 제 자신도 잃었다. 떨어지는 순간에도 종호는 민기를 생각했다. 고로 종호와 민기 모두 자신의 낙원을 잃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그들은 서로에게 끝이 좋지 않은 실낙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태
:[7대 죄악에서]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