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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의 별들이 곧 품 안으로 쏟아질 듯 환하게 반짝였다. 저를 한 번만 봐달라는 듯, 두 눈이 아리게 빛났지만.

 

 

 

 그 수많은 별 중에 너는 없어.

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줘

할라

 깜빡, 깜빡.

 

 힘겹게 빛을 뿜어내던 주홍빛 전구가 천천히 점멸했다. 컴퓨터 본체가 돌아가는 소리 위로 빗소리가 은은하게 겹쳐졌다. 연구실 전체에 희미하게 배어있는 담배 냄새. 책상 위 빈 머그컵들과 흐트러진 논문들 사이에 엎어져 있던 우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잠들기 전보다 습기를 머금어 무겁게 가라앉은 주변 공기가 피부로 느껴져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느다란 빗방울이 약하게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몽롱한 상태였지만 역시나 가장 먼저 스쳐간 생각은 모든 연구원들 다 같았을 것이다.

 

 ‘광학 망원경 뚜껑 닫았었나?’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난 우영이 반사적으로 창문 가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고개를 기울이자 돔 형태의 뚜껑이 앙다물려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우영이 바로 옆 간이의자에 털썩 앉았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가, 시야가 흐릿했다. 목에 걸어 둔 안경을 끼고 정신을 차릴 겸 창문을 열었다. 서늘한 공기와 함께 빗방울이 들어왔다. 우영은 비 오는 날 특유의 향을 좋아했다. 습기를 머금은 풀과 흙의 내음. 괜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깊숙이 들어온 공기는 폐 안의 노폐물을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창문 앞에 앉아있는 우영의 맞은편 벽면에는 지금까지 밝혀진 별자리가 벽화처럼 빈틈없이 수놓아져 있었다.

 

 인간이 내다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는 매력적이고, 그만큼 위험했다. 왜, 가만 보면 식물들도 그렇지 않나.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란타나처럼. 쉽게 갈 수 없고 숨겨진 비밀이 많은 곳. 아주 넓지만 인간이 볼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 우주. 그래서일까, 우영은 어릴 적부터 천체나 은하 등 우주공간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것을 남들보다 먼저 찾아내고 싶었다. 이러한 호기심과 욕망이 우영을 이곳 천문대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몇 년째 이렇다 할 결과는 없고 말이다. 책상 위에 한가득 쌓인 논문 자료와 서적들을 본 우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눈 붙이기는 글렀군,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빈 머그컵을 집었다. 커피를 아주 진하게 태울 생각이었다.

 

 

 

 거의 5년 만의 유성우 소식이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천문대 개방주기 때문에 사람의 손때가 탄 천문대 전체를 깨끗하게 단장할 필요가 있었다. 연구원들 단체로 망원경을 새로 조립하고 렌즈를 닦거나 열람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유성우 날짜가 천문대 개방주기 이후라 한층 여유가 생겼다. 우영은 자꾸만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체 망원경의 렌즈를 꼼꼼히 닦았다. 저번에도 유성우를 볼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지만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본가로 내려갔었지. 그때 다른 연구원들이 찍은 사진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던 쓰라린 기억이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유성우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관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유성우 소식으로 뉴스가 시끌벅적하던 그날 당일, 우영은 천문대 연구원들과 함께 깨끗하게 손을 본 광학 망원경 뚜껑을 열었다. 그 새 꽤 쌀쌀해진 바람에 우영은 코트 자락을 여몄다. 다들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매일 하는 전형적인 연구나 분석 결과에 대한 토론이 아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온기가 가득 퍼지는 느낌이었다. 이제야 천문대 안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얼마 정도 기다렸을까,

 

 기다란 꼬리를 단 유성우가 검푸른 하늘을 가득 메웠다. 세상 어디를 가도 보지 못할 광경이었다. 가장 진기하고, 아름다운 장면. 우영은 유성우의 축제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문득 어린 시절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홀린 듯 쳐다보기만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잡았다. 모두 유성우에 집중한 천문대 안에 셔터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어느 정도 사진을 찍은 우영이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을 때였다.

 

 “어어? 저거 좀 이상한데요?”

 

 한 연구원의 불안한 외침에 평화롭던 관람이 깨졌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여유로움을 흩트린 것은 줄곧 광학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연구원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당황한 듯 바보 같은 소리만 내다가 망원경에서 물러선 다음 다른 연구원들을 불렀다. 다들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망원경 근처에 모였다. 연구소장이 대표로 망원경 앞에 섰다. 유성우 하나가 이쪽으로, 그러니까 정확히 천문대가 위치한 방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만 예쁘지 어쨌든 운석 덩어리에 불과했다. 만약 유성우가 천문대에 떨어진다면, 아마 천문대는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지겠지. 초비상 사태였다. 연구소장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애써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에 연구원들도 그나마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소장이 내린 결정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들 차에 탑승하도록. 모두 산 밑으로 피신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연구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목숨이 걸린 긴박한 상황 앞에서 망설일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운석의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어마 무시했고, 연구원 전원이 주차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산 전체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결과적으로, 정말 다행히도 유성우는 천문대를 비껴가 옆 산에 떨어졌다. 그래도 그 여파는 무시할 게 되지 못했다. 무거운 운석 덩어리가 땅과 접촉하는 순간, 꼭 지진같이 산 전체가 흔들렸으니.

 

 벙쪄있던 우리는 곧장 주차장으로 가 차에 올라탔다. 새로운 것을 탐구한다는 흥분과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연구소장의 지휘 하에 운석이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30분쯤 달렸을까, 원래 도로가 있던 곳에 커다란 구덩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속력을 늦추다가 아예 멈춰버린 차 안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간 것은 우영이었다. 우영은 소장이 말릴 새도 없이 길의 끄트머리에 서서 구덩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로 옆에 있던 노란 국화밭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생각이 많을 때 혼자 머리를 식히러 왔던 안식처가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우영은 곧 기이한 점을 찾아냈다. 운석이 떨어진 그 주변만 아직 노란 국화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른 곳은 다 쑥대밭이 되었는데, 그곳만 망가지지 않은 것이다. 대체 왜? 물음표가 우영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우영은 뒤를 힐끔 보았다. 다들 장갑을 끼거나 보호 장비를 챙긴다고 여념이 없었다. 연구소장은 어딘가 전화를 거는 듯했다. 천문대를 떠나기 전, 어떠한 경우에도 본인의 지시를 따르라던 소장의 경고가 떠올랐지만, 우영의 궁금증은 경고를 넘어서고 말았다. 우영은 모두가 한눈을 판 사이에 구덩이로 조심히 발을 뻗었다. 한발 두발, 다리를 조심스레 뻗으며 도착한 국화 밭 중심에는 우영의 키 보다 몇 뼘 정도 더 큰 운석이 박혀있었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전혀 위화감 없이. 막상 가까이 오자 긴장감 때문에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아니, 어쩌면 중요한 발견을 가장 먼저 할 수도 있다. 침을 삼킨 우영이 심호흡을 하고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운석과의 거리가 좁혀졌고, 마침내 우영의 오른발이 국화 한 송이 위에 포개어졌다.

 그 순간. 마치 넘어서는 안 되는 결계 안으로 들어온 듯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노란 꽃잎이 사방에 흩날렸다. 우영은 급하게 뒷걸음질을 치며 팔로 얼굴을 막았다. 바람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우영과 운석 주위를 맴돌았다. 눈을 꼭 감고 바람을 막아내던 우영은 서서히 잠잠해져가는 바람결을 느끼고 천천히 팔을 내렸다. 여전히 허공에 노란 꽃잎이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그리고 운석은,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우영은 자신이 잘못 본 건가 싶어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운석에서 빛이 난다고? 운석은 아주 미묘하게, 점점 밝아졌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아주 밝은 빛을 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공기의 흐름이 멈춘 듯 사방이 고요했다. 바람 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영의 몸도 굳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간, 운석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짧은 찰나에 우영의 머릿속에 온갖 잡다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외계인일까, 아니면 그냥 지나가던 들짐승? 그것도 아니라면, 남은 바람의 기류? 우영이 창백한 낯으로 머리를 굴릴 때, 누군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운석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산짐승도 무엇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요정같이 생긴. 우영의 머릿속에는 없던 그림이었다. 쭈뼛 소름이 돋았다. 몸 전체가 딱딱하게 굳었다. 정체 모를 그 사람은 우영에게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남자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서 우영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렸고, 우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눈을 떠 보니 익숙한 천장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우영은 갑자기 바뀐 장소에 어리둥절해하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어쩐지 익숙하다 싶었더니, 천문대 안 우영의 연구실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구덩이 안 운석 앞에 서있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머리가 지끈거려 포기했다. 그래도 익숙한 저의 담배 향이 코끝에 맴돌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역시 아까 있었던 일은 꿈이었나 보다. 그럼,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지. 제가 미친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뒤척였다. 우영은 제가 누워있는 침대 옆 간이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자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단번에 사고가 정지되었고 몸에 한기가 돌았다. 남자는 우영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의 근처에서 국화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것을 보니, 부정하고 싶지만 아까의 장면은 현실이었나 보다. 우영은 사람인지 외계인인지 모를 미지의 존재를 조우한 공포에 몸이 덜덜 떨렸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꼭 블랙홀처럼. 하지만 남자의 눈은 블랙홀과는 반대로 빛을 가득 담은 듯 반짝였다. 어쩌면 시선을 피하지 못한 이유 중, 누군가가 들으면 곧장 우영을 정신병원으로 보낼 수도 있겠지만, 쨌든 그 이유 중 하나는 역시 빼어난 외모 때문인 것 같다. 남자는 TV에 나오는 웬만한 연예인들을 능가했다. 무례하다는 생각도 잠시 잊고 우영은 남자를 빤히 응시했다. 자꾸만 눈길이 가는, 출중한 얼굴이었다. 남자도 그런 우영을 쳐다보다가 입꼬리를 끌어당겨 싱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자 온갖 생각으로 복잡하던 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바로 코앞에서 웃는데, 세상만사 내 알 바냐.

 

 “정신이 들어?”

 

 남자는 우영이 기절하기 전처럼 이마 위에 손을 얹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린 우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무안한 듯 남자의 팔을 물렸다. 얼음처럼 차가웠던 감촉에 괜히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거리자, 남자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부드러운 음성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어 우영의 귀에 박혔다.

 

 “내 이름은 강여상이야.”

 

 남자는, 여상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오랜 시간 동안 우영을 응시했다. 왜 자꾸 쳐다보지. 아직 잠에서 덜 깨서 그런가 현실감이 없었다. 멍청하게 앉아있자 여상이 손가락으로 우영의 손등을 톡톡 건드렸다. 찌릿,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었다.

 

 “너는 이름이 뭐야?”

 

 “아…내 이름? 정우영.”

 

 간단한 통성명을 마치자 찾아온 것은 어색한 침묵이었다. 어째 처음보다 더 어색해진 공기에 우영은 헛기침만 해댔다. 사실 여상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았으나 무슨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딱히 외계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도 않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빠진 우영을 본 여상이 희미하게 웃었다.

 

 “뭐부터 말해줄까?”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콕 집어 말하는 여상에 우영은 다시 소름이 돋았다. 외계인들은 독심술도 가능한가? 외계인, 독심술.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이야긴지.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눈앞의 여상이 이건 꿈이 아니고, 환상도 아니라며 일깨워주었다. 우영은 빠르게 체념하고 제일 궁금했던 질문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너 외계인이야?”

 

 어쩌면 여상이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며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상은 지금껏 우영이 봤던 표정 중 가장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바닥만 빤히 응시했다. 덩달아 심각해진 우영도 잔뜩 긴장한 채 여상의 답을 기다렸다. 여상은 입술을 달싹이다, 말을 시작했다.

 

 “다른 별에서 왔으니까…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다른 별?

 

 일반인들이 들었다면 전혀 믿지 않을 소리였다. 그러나 우영에게는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다. 원래 외계인의 존재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어젯밤 직접 본 것도 있으니 아예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거 연구 가치가 있겠는걸.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우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고, 여상은 성실하게 답을 해주었다. 그날 밤 연구실의 불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밤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연구원이 단 한 명도 없다니,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우영은 연구원들 한 명 한 명 직접 찾아가 운석이 떨어진 것이 기억이 나지 않냐고 물었고, 당연하다는 듯 미친놈 취급받았다. 심지어는 가장 먼저 떨어지는 운석을 발견한 연구원마저 상태는 똑같았다. 유성우를 본 것 까지는 기억했지만, 그 후로 바로 쉬지 않았냐며 오히려 반문을 했다. 다들 잠도 안 자니 몸이 상한 것 같으니 건강을 챙기며 연구하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우영은 저 멀리서 저를 지켜보고 있는 여상을 한 번 노려보았다. 어떻게 손을 썼으면 이보다 더 완벽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면 왜 제 기억을 지우지 않은 것일까. 제일 가까이서 모든 것을 다 목격한, 어떻게 보면 가장 위험한 인물인데.

 

 나중에 이렇게 물어보자 여상은 이렇게 답을 했던 것 같다.

 

 “누구 한 명은 나를 기억해줬으면, 도와줬으면 좋겠어서. 그게 너였어, 우영아.”

 

 그렇게 우영은 여상과 기이한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연구원들의 기억을 지우고 뻔뻔하게 제 연구실에 있을 때는 능숙하게 인간 행세를 할 때는 언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상은 꼭 세상에 처음 나온 아기 사슴 같은 행동을 보였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우영의 간이침대를 차지하고서는 모서리에 걸터앉아 연구실을 쭉 훑어보았다. 기분이 좋거나 몸이 근질거릴 때는 연구실 안을 돌아다니며 질문을 쏟아내는데, 우영은 한가할 때는 일일이 대답을 해주었지만 엄청난 질문 공세에 매번 대답을 하는 대신 침묵으로 응하는 식이었다. 절대로 고의가 아니라 곧 있을 천문 학술제로 인해 우영은 정말로 바빴다. 처음 한두 번은 대답을 해주던 우영이 조용해지자 시무룩해진 여상은 금방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다. 여상의 눈길을 끈 것은 침대 맞은편 벽면에 붙어있는 별자리와 은하계 도식 자료였다. 별자리 중 몇 개는 우영이 네임펜으로 직접 그려 넣은 것이었다. 특히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성들과 얼마 전 발견되어 새롭게 이름이 붙은 행성을 볼 때마다 여상의 눈이 빛났다. 그걸 본 뒤로 여상은 가끔 우영에게 제 별을 찾아달라며 조르기 시작했다. 여상의 행동반경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우영의 연구실, 화장실, 연구실, 날이 좋은 날에는 산책 겸 해서 숲, 다시 우영의 연구실. 식사도 우영이 연구실로 가져다주었기에 식당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답답한 기색 하나 없이 잘 적응해나갔다. 적응력이 높다. 우영은 노트에 이렇게 기록해두었다.

 

 우영은 여상을 진짜로 외계인 대하듯 했다. 밥은 무엇을 먹는지, 잠은 어떻게 자는지 여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시피 했고, 또 집착적으로 관찰했다. 놀랍게도 여상은 외계인-전적으로 우영의 판단이다-임에도 불구하고 체온이 낮다는 것 이외에는 인간과 별다를 게 없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우영이 가져다주었던 음식은 다 거절한 주제에 어쩌다 한 번 연구원들이 시켜 먹었던 '치킨'에 꽂혀 그것만 먹는다는 것이었다. 주제에 입은 또 까다로워서 양념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하지만 치킨을 매번 시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우영은 제 식비를 조금 더 내고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여상을 위한 치킨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아주머니들이 우영을 아니꼽게 봤지만 양념치킨을 복스럽게 먹는 여상을 보고는 닭다리를 세 개씩 넣어주기도 했다. 다리 세 개 달린 닭이라…어째 모두에게 예쁨을 받는 여상의 모습에 우영은 괜히 짜증이 솟구쳐 예전에는 제 침대였던 곳에서 팔자 좋게 자고 있는 여상을 노려보았다.

 

 여상은 연구원들에게 자신을 우영의 단짝 친구라고 소개한 듯했다. 여행 겸 우영의 얼굴을 보러 와 한 달간 묵을 것 같다고 말했는지, 연구원들이 우영을 볼 때마다 한 달 동안 편하게 지내다 갈 수 있게 잘 챙겨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래, 여상은 영악한 부분이 있었다. 외계인들은 다 저럴까? 우영은 노트를 꺼내 볼펜 뚜껑을 입으로 열고 무언가를 적었다. 사각사각, 볼펜촉이 종이 위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매우 영악함.' 밑줄에 별표까지 한 뒤에야 노트를 덮은 우영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이 노트로 말하자면, 반강제로 함께 지내기 시작하던 첫날부터 여상의 특이점을 기록한 공책이었다. 처음에는 엄청난 연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제법 그럴싸한 것들을 적었지만 조금 친해진 후로는 그냥 마음에 들지 않거나 거슬리는 점을 적는 초등학생의 일기장으로 전락했다. 한 번은 여상에게 공책을 들켰다. 외계인이 글씨는 어떻게 알아보는지, 처음에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저에 대한 기록을 읽던 여상은 뒤로 갈수록 공책과 우영을 번갈아보았다. 그때 여상에 제게 무심하게 던졌던 한 마디를, 우영은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건 왜 적는 거야?”

 

 진짜 너무해 강여상.

 

 그렇게 여상과 티격태격 대며 지낸 지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상은 이제 천문대가 제법 편해 보였다. 연구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지냈다. 인사성도 밝고 싹싹한 여상은 나이가 지긋한 연구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중 여상이 별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아는 몇몇은 망원경 사용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아들 같다며 굳이 우영의 연구실까지 찾아와 주전부리를 건네주고 갔는데, 우영이 저도 달라며 손을 내밀면 어깨를 으쓱이고는 바로 뒤를 돌았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더니, 옛날 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간식을 받고 좋아하는 여상이 밉지가 않다는 것이다. 초콜릿이 뭐라고 저렇게나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자, 우영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었다.

 

 망원경을 조작할 줄 알게 된 여상은 밤에 틈만 나면 살금살금 연구실 밖으로 나가 별을 보았다. 지루한 천문대의 삶 속에서 스스로 작은 취미를 가진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여상에게 간이침대를 뺏긴 우영은 소파에서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일찍 누워서 그런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러다 겨우 꿈나라의 입구까지 갔는데, 점점 커지는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살짝 떠보니 여상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무엇을 하려는지 지켜볼 생각으로 죽은 듯이 얌전히 있었다. 여상은 잠든 우영에게 눈길을 한 번 주고는, 슬리퍼를 신고 타박타박 발소리를 내며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여상의 동그란 뒤통수가 사라지고 난 뒤 우영도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이 밤중에 어디를 가는 건지. 우영은 안경을 쓰고 여상이 사라진 방향으로 뒤를 밟았다.

 

 도착한 곳은 천체망원경 앞이었다. 탁 트인 통유리 앞에 놓인 3대의 망원경. 여상은 그중 중간에 있는 망원경을 만지고 있었다. 이때 우영은 여상이 망원경의 사용법을 모르는 줄로만 알았기에 식겁을 하며 뛰쳐나갔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가격을 생각하자 눈앞이 아득해졌다.

 

 “너 지금 뭐 해?”

 

 “별 보려고.”

 

 “아니, 이거 쓰는 방법은 알고?”

 

 “응. 민성 아저씨랑 윤호가 가르쳐줬는데.”

 

 아무리 베테랑들이 가르쳐 주었다지만 그래도 영 불안한지 주변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우영을 째려본 여상이 다시 망원경에 손을 댔다.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사실 우영은 조금, 아니 많이 놀랐다. 생각보다 잘 해내는 여상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루 종일 먹고 자는 줄로만 알았는데 잘 하는 게 있었네. 그리고 또 의문이 생겼다.

 

 “별은 왜 보고 싶은데?”

 

 마음속으로만 말한다는 게 입을 타고 나갔다. 렌즈에 눈을 대고 있던 여상이 고개를 들어 우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여상의 표정은 조금 슬퍼 보이기도,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바로 말을 하지 않고 한참 뜸을 들이던 여상이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답을 주었다.

 

 “돌아가고 싶어서.”

 

 “어디로?”

 

 “내 별로. 그래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려고.”

 

 잘 적응하나 싶었는데 사실은 아니었나 보다. 처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여상의 모습에, 우영은 거의 충동적으로 제안을 했다.

 

 “내가 도와줄게. 너 별 찾는 거.”

 

 “정말? 고마워.”

 

 아, 다시 웃는다. 여상의 미소를 보자 불안했던 마음과 걱정거리가 사르르 녹았다. 그때 처음으로 여상이 계속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확실히 무언가에 쓰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우영이 지금 여상을 안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여상은 갑작스레 다가온 온기에 놀란 듯했지만, 딱히 피하지는 않았다. 우영은 여상의 체온을 높여주기라도 할 기세로 한참 동안이나 여상을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날 새벽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암묵적으로 여상의 지정석이 된 간이침대 위에서 눈을 뜬 우영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여상의 동그란 뒤통수였다. 웬일로 여상이 책상 앞에 앉았다. 풀벌레들이 찌르르 우는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공간에 새로운 소리가 뒤섞였다. 연필이 종이에 마찰하는, 기분 좋은 사각거림. 여상은 무언가를 쓰고 있는 듯했다. 그의 오른팔이 움직일 때마다 머리카락도 함께 춤을 췄다. 무엇을 저렇게 열심히 쓰고 있을까, 호기심이 일었지만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었기에 우영은 한참 동안 여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각대는 종이 위에 남은 흑연 자국이 오로지 저를 위한 것이기를 바라며.

 

 우영은 처음에는 여상의 별을 찾아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미 발견된 행성들의 리스트를 뽑아 여상에게 보여주었지만, 돌아오는 건 침울한 표정이었다. 아니, 저런 표정은 싫어. 우영은 여상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여상의 별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에 잡히는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뽑아 입에 물었다.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이번에는 라이터를 꺼냈다. 음식점 개업행사 때 받은 형광색 싸구려 라이터였다. 몇 번을 헛돌다가 힘겹게 불을 붙이고 깊이 빨아들였다. 그리고 숨을 내쉬었다. 희뿌연 연기가 우영의 입술 사이로 피어났다. 여상은 그 일련의 과정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신기한 물건을 보는 어린아이처럼 여상의 눈이 반짝였다. 안경까지 벗어두고 미간을 찌푸린 채 자료를 보던 우영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여상이 소파에 앉아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고개를 기울이자, 여상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우영은 여상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손가락의 방향을 눈으로 좇았다. 아, 담배 말인가. 우영이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여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영의 곁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제 곁에 서서 담배를 기웃거리는 여상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꼭 말티즈같네. 남는 손으로 여상의 머리카락을 헝클이자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는지 여상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에 우영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궁금했어?”

 

 “응. 그건 뭐야?”

 

 “구름과자.”

 

 “맛있어?”

 

 “어…나름? 한 번 피워볼래?”

 

 ‘과자’라고 하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여상에 우영은 웃음을 꾹 참고 들고 있던 담배를 그의 입가에 대었다. 필터 부분으로 여상의 입술을 톡 건드리자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필터 끄트머리를 그 속에 넣어주자 입술이 앙 다물렸다. 연분홍빛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우영이 정신을 차리고 말을 했다.

 

 “이제 깊이 빨아들여봐.”

 

 여상은 우영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왔다. 다만 담배는 맛이 없었고, 여상은 피는 방법을 몰랐을 뿐.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자마자 입을 떼고 잔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하는 여상에 당황한 우영이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고 쓰다듬어보기도 했다. 조금 뒤 물을 먹고 좀 나아진 여상의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맵고 맛없어. 이런 걸 왜 하는 거야?”

 

 “네가 아직 인생의 쓴맛을 몰라서 그래.”

 

 킥킥 웃으며 여상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쭉 민 우영이 다시 담배를 물었다. 질린다는 표정으로 우영을 보던 여상은 다시 기침이 나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물 더 줄까? 라고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조그마한 뒤통수가 그냥, 너무 귀여웠다.

 

 여상의 별을 찾으려 잠도 거의 못 자고 오만 서적을 다 뒤진 지가 벌써 10일째. 우영은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이쯤 되니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는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여상과의 약속만 아니라면 이미 포기했을 것이다. 사실 이제 이 방법이 아니라도 어떻게 하면 여상이 미소를 짓는지, 웃음을 터뜨리는지 알고 있다. 그냥, 옆에서 웃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들고 있던 책에 머리를 박은 우영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천천히 내뱉고 고개를 들었다. 톡, 무언가 종이 위로 떨어졌다. 아. 우영은 코에서 따뜻한 액체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급하게 코를 막았다. 종이에 검붉은 액체가 스며들었다. 소파에 누워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던 여상이 작은 소란에 고개를 돌렸다. 여상의 시선이 코를 막고 있는 우영의 손에 꽂혔다. 손을 타고 흐르는 피에 여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영이 여상에게 휴지 좀 달라며 웅얼거렸지만, 여상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시선이 온통 우영의 손에 꽂혔다. 우영의 바로 앞에 온 여상은, 피가 흐르는 팔을 잡고, 혀를 내어 핥았다. 말캉하고 차가운 것이 팔에 닿자 우영이 몸을 떨었다. 고개를 숙이자 제 팔을 핥고 있는 여상이 보였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잃은 우영은 가만히 서서 여상이 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여상은 위로, 점점 더 위로 올라왔다. 어느덧 서로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여상의 입술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입 주위에는 피가 이리저리 묻었다. 닦아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코를 막고 있던 손을 떼자, 다시 피가 흘렀다. 여상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우영의 입술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을 혀로 닦아냈다. 입술을 뗐다가 또다시, 그리고 또다시. 입술을 부드럽게 핥는 감촉에 우영은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참기 위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예 양손으로 제 얼굴을 잡고 빨아대는 여상을 겨우 밀어냈다. 어지러운 머릿속으로 겨우 문장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너, 너 왜 이래.”

 

 “닦아주잖아.”

 

 “이제 그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시 입술을 덮어버리는 여상을, 당연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진득하게 입술을 빠는 여상에 우영은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끈을 놓았다. 여상의 가는 허리를 감싸고, 목을 끌어당겼다. 자꾸만 부딪혀오는 촉촉한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놓지 않았다. 겨우 입을 뗐을 때, 피로 얼룩덜룩 해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여상의 뒤통수가 보이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다. 90퍼센트의 확률로 미동이 없었고, 7퍼센트의 확률로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3퍼센트의 확률로는, 뒤통수 말고 얼굴을 보여주었다. 오늘은 그 3퍼센트의 날인 가보다. 언제 깼는지 눈을 깜빡이던 여상은 우영과 눈이 마주치자 말없이 웃으며 가볍게 키스를 했다. 오늘따라 조금 창백해 보이는 안색에 우영이 손을 들어 여상의 볼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여상은 다시 눈을 감은 채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 순간이었다. 편안해 보이기만 하던 표정이 울상이 되는 것은,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우영의 손을 밀어낸 여상이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다시 돌아가야 돼.”

 

 여상을 따라 몸을 일으키던 우영이 정지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예상보다 빠른 전개에 우영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로 가는데.”

 

 “원래 살던 별.”

 

 “이제 그만 좀 해. 너랑 장난할 기분 아니야.”

 

 “너야말로 왜 이래. 믿어줬잖아. 도와준다고 했잖아. 아니, 어떻게 하면 믿어줄 거야? 다시 돌아가는 데 네 도움이 필요해, 우영아.”

 

 물론 처음에는 도와주려고 했었다. 그건 진심이었고, 꼭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수차례 다짐도 했는데. 하지만 나는 너를 쉽게 놓아줄 수가 없어. 못 믿는 척 시간이라도 더 끌고 싶어서. 별을 찾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을 너랑 더 보내고 싶어.

 

 “별은 찾고 있어?”

 

 여상아. 나는 네가 이렇게 물을 때마다

 

 “당연하지.”

 

 속으로는 아니라고 대답했어.

 

 매일 찾는 척을 했고, 네가 잠들면 너의 조그마한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외우려고, 매일 너만 쳐다봐.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는 여상을 보고 나서야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어.

 

 그러나 이제 와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우영은 좌절했다.

 

 그날 저녁, 여느 때와 다름없이 2인분의 저녁 식사를 들고 온 우영은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여상을 깨웠다. 매우 피곤해 보이는 여상이 부스스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우영도 맞은편에 앉아 여상에게 수저를 건넸다.

 

입이 열리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우영은 제 생각이 아니기를, 제발 틀리기를 바라며 말문을 열었다.

 

 “있잖아, 여상아.”

 

 “으응?”

 

 “만약에 말이야, 이건 정말 만약인데.”

 

 “응.”

 

 “내가 별을 못 찾거나 그전에 시간이 다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

 

 여상은 들고 있던 숟가락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였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영은 입안이 바짝 말랐다. 설마. 설마 그건 아닐 것이다. 사실이라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다시 돌아가겠지?”

 

 “…어디로?”

 

 “어디긴, 원래 살던 별로.”

 

 “뭐야. 그냥 갈 수 있어? 그럼 나한테 왜 찾아달라고 한 거야?”

 

 “그냥. 너도 내가 사는 별이 어딘지 알면 좋을 것 같아서...”

 

 여상의 웃음이 희미하게 번졌다. 여상이 웃는다. 지금 네가 내 앞에서 웃는데 별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우영은 마주 웃어주고 식사를 시작했다. 저녁시간 내내 여상의 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날 밤, 연구실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아무도 이게 뭐라 형용할 수 없었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우영은 여전히 연구에 몰두해 있었고, 여상은 늘 그렇듯 간이침대에 누워있었다. 창문으로 달빛이 길게 드리워져 여상을 비추었다. 여상의 몸이 반짝반짝 빛났다. 우영이 빛나는 운석을 본 그날처럼. 여상은, 아주 미묘하게, 점점 밝아졌다. 그 순간까지 여상의 눈은 우영의 뒷모습을 담고 있었다. 서서히 밝아지던 여상은 순간적으로 아주 밝은 빛을 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여전히 달빛은 간이침대를 비추고 있었다. 새것처럼 하얀 침대보가 달빛을 반사했다.

 

 어느 정도 연구를 끝마친 우영은 의자에 앉은 채 침대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곤히 자고 있을 여상을 생각하며, 행복한 고민 속에 빠져 침대를 마주했다.

 

 "여상아?"

 

 달빛을 머금어 은은하게 빛나는 순백색의 이불. 분명 누가 머문 흔적은 있지만, 누군가가 사라졌다. 우영은 마음 한편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꾹 누르고 여상을 찾아 돌아다녔다. 화장실에 갔을 거라고 생각했고, 또 별을 보러 망원경 앞에 서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상쾌한 공기를 마실 겸 천문대 앞을 산책하고 있겠지. 아니, 그래야만 한다.

 

 어디를 가도 여상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천문대 안으로 들어온 우영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이대로 주저앉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깨를 잡아오는 부드러운 손. 이번에는 확실하다.

 

 “강여상, 너 어디에-!”

 

 “여상이?”

 

 우영의 어깨를 잡은 손의 주인은 윤호였다.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아주 날카로운 바늘로 우영을 찔렀고, 우영은 그대로 터져버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는 우영에 윤호는 당황했다.

 

 “너 왜 이러냐? 여상이 딱 한 달만 있다가 간댔잖아. 오늘이 딱 한 달째고. 너 당연히 아는 거 아니었어?”

 

 오늘이 한 달 째였구나. 진작 말해주지,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게.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에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호가 뒤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우영을 불렀지만 곧바로 연구실로 들어와버렸다. 돌아간다는 게, 정말 그런 의미였던 거야?

 

 제가 너무 안일했고, 나태했다.

 

 우영은 소리 죽여 흐느꼈다. 은빛 달빛만이 공허한 연구실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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