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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정말 믿었기에

즁화

홍중이 정말 그 아이를 믿었었기에 그런 건지 아니면 그저 그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났던 것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저 그 아이 때문에 홍중이 쌓아온 모든 일들이 망가져버렸다는 것 하나만은 홍중의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

 

 

박성화, 그 아이는 일을 미루지도 않았고 자신이 맡은 일은 성실히 했으며 무엇보다 홍중의 말을 잘 새겨듣고 행동하는 사람이었기에 홍중은 그 누구보다 그 아이를 신뢰했다. 또한 홍중이 참석하지 못하는 중요한 회의가 열릴 때 홍중은 자신을 대신하여 성화를 회의에 참석하게 하기도 하였으며 그 정도로 홍중은 성화를 신뢰하였고 성화 역시 홍중의 신뢰에 보답을 한다는 듯 실수를 하지도 않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내고는 하였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평화로웠으며 위로 올라갈 일만 남은 듯, 그런 분위기만 맴돌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조금씩, 잘 맞추어져 있던 퍼즐의 한 부분이 사라진 것 마냥 위로 잘 올라가기만 했던 조직은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혹시나 누군가가 조직의 정보를 빼돌린 것은 아닐까. 아무 걱정 없이 지금 이 조직만 잘 관리하면 됐던 홍중의 머릿속에는 날이 갈수록 걱정만 하나, 둘 서서히 늘어가기 시작하였다. 왜 이러는지 모르는 답답한 마음에 소리도 질러보고 눈물도 흘려보고 미친 듯 웃어보기도 한 홍중의 곁에는 언제나 그랬듯 항상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서 있는 성화가 있었고 홍중은 평소에 믿고 신뢰하던 성화에게 기대는 날도 있었으며 홍중이 그러는 날이면 성화는 또 아무 말 없이 그런 홍중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런 홍중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고 하면, 홍중이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며 성화에게 기댔을 때,

 

 

 

“성화야... 잘 풀리겠지?”

“당연하죠. 그냥, 잠시 이러는 거 일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홍중 몰래 성화의 입꼬리는 조금씩 올라가며 마치 자신이 승리자라도 된 듯한 미소를 띠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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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야 잘 되고 있는 거지?”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곧 있으면 이 조직도 망할 것 같고 금방 다시 돌아갈게요.”

 

 

 

홍중의 방에서 나와 전화를 받은 성화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달리 차분함이 사라지고 가소롭다는 듯한 뉘앙스를 잔뜩 풍겼다. 누구인지 모를 사람과 의미심장한 몇 마디의 대화를 더 나눈 성화는 전화를 끊고는 보통 사람이라면 찾지 못할, 아니 그냥 성화가 아니라면 찾을 수 없을 듯한 그런 공간으로 향하였다. 성화가 들어간 그 공간에는 두꺼운 책들이 쌓여있었으며 알 수 없는 물건들도 공간을 꽤나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D-3이라고 써져있는 책 또한 있었다. 그 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화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냥 넘길 일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성화는 스파이였다. 홍중의 조직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려고 온, 그리고 성화가 홍중의 앞에서 일을 열심히 처리하는 것도, 아무 말 없이 홍중이 자신에게 기댈 때 받아주는 것도, 그리고 그 외에 모든 행동들이 전부 홍중이 자신을 믿게 하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이었던 것이다. 홍중이 자신을 믿고 신뢰해야 자신의 계획이 순탄하게 흘러가니까, 그래야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진행되니까. 그리고 그걸 알리 없는 홍중은 성화의 계획은 하나도 모른 체 그냥 성화에게 마음을 내줄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성화가 홍중과 함께 한 시간은 점점 늘어갔고 그렇게 홍중이 성화를 온전히 믿게 된 후 비로소 성화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 둘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홍중이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넘겨줄 때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홍중의 조직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빼내 자신의 조직으로 보내고는 하였고 그 정보들을 받은 성화의 조직은 홍중의 조직을 끌어내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홍중의 조직이 뭔가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성화의 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홍중을 위태롭게 만들고 본격적으로 무너트리기 위한 전 단계였다면 지금은 바로 조직을 무너트릴 수 있는, 그런 상태였다. 성화만 아는 그 장소에 D-3이 D-0이 된 바로 오늘, 성화는 어떻게든 이 일을 수습하려는 홍중을 조용히 따로 불러냈다. 그때까지 홍중은 성화에게 아무 의심도 없었기에 아무 말 없이 그저 성화가 이끄는 대로만 따라갔고 성화를 따라 꽤나 오래 걸었을까 점점 음산해지고 숨 막히게 변하는 공기에 홍중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대체 어디를 가길래 이렇게 오래 걸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그 짧은 이야기가 끝난지 얼마 안 되고 조금만 가면 된다 하던 성화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성화와 홍중은 작은 방문 앞에 도착을 하였다. 홍중은 성화에게 이 방은 무엇이냐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성화는 그저 여유롭게 웃을 뿐이었다, 홍중이 이 방문을 열고나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모두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지 성화는 남몰래 기대 중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떤 표정일지 상상은 안가지만 분명 재미있을 것이니까.

 

홍중은 성화를 따라 그 방으로 들어갔고 다시 한번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불러 죄송하지만, 이것 좀 봐주실래요?”

 

 

그 말을 하며 성화는 홍중에 두꺼운 책을 한 권 건넸다. 성화가 건넨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홍중의 조직에서 빼돌린 정보들과 자신의 계획,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신의 일기들을 담은 책이었다. 홍중은 그 책을 받아들고는 천천히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냥 무표정으로 읽던 홍중의 표정은 그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천천히 읽어나갈수록 일그러졌고 평화롭던 손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였다. 홍중은 그 책을 읽으며 헛웃음을 쳤고 성화는 그 옆에서 마치 홍중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홍중의 반응을 구경하고만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책을 다 읽은 홍중의 표정은 그렇게 어두울 수가 없었으며 천천히 성화를 올려다보는 눈빛은 탁해져 생기라고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 네가 꾸민 일이라는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날 가지고 놀아?"

"이제라도 아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동안 입이 얼마나 근질근질했는지."

"박성화, 네가 어떻게 이래."

 

 

어떻게 이러긴요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제 목적이 이거였는데.- 성화는 그 말을 하며 홍중을 쳐다보았고 잘게 떨리던 홍중은 손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기 시작하였다.

 

 

“이를 어쩌나 그렇게 믿던 사람한테 배신이나 당하고 앉아있고, 이제 할 일은 있어요? 당신이 앉아있는 그 자리는 이제 내가 가져갈 거라.“

 

 

아 그리고 무릎 안 꿇고 뭐해요? 당신이 만든 거잖아. 원래 권력자는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했을 때 무릎을 꿇어 맞이해라.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요. 지금 그쪽 목숨은 내가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잠시 넋이 나간 듯한 홍중은 그 말을 듣고는 몸을 살짝 떨었으며 성화는 그런 홍중을 바라보며 어딘가 빨리하라는 듯한 강압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 권력자는 홍중, 자신이었지만 자신의 조직에 대한 정보가 다 성화에게로 넘어갔으며 절대로 안전하지 않은 이 자리에서 홍중은 을이었다. 한마디로 홍중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권력들을 다시 찾을 생각도 못 하고 이 권력들과 부를 다 넘겨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있으면서 항상 생각했던 건데 당신은 사람을 참 쉽게 믿어.”

 

 

그리고 홍중이 마치 분노에 찬 듯 몸을 잘게 떨며 성화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성화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홍중을 쳐다보고는 말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홍중의 곁을 떠나는 사람도 많았으며 홍중의 부와 권력 또한 사라지고 말았다. 성화를 바라보던 신뢰와 믿음으로 가득 찬 눈빛은 어느새 증오와 분노, 배신감을 가득 담고 있었다. 분노와 증오 같은 감정을 담고 있는 홍중의 눈에는 곧 떨어질 듯 눈물이 고여있었지만 성화의 앞에서 이렇게 눈물까지 보인다면 정말로 자신이 성화에게 이용당한 체로 진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곧 떨어지려고 하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눈을 크게 뜬 상태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성화는 그런 홍중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지만 홍중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해서 성화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홍중의 속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분노를 담은 배신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홍중은 성화를 노려보며 조용히 복수심을 키워나갔다.

 

 

-

 

 

그날 이후 홍중이 앉아있던 자리에 성화가 앉아있었으며 홍중의 취향이 잔뜩 묻어있던 건물은 전부 성화의 취향으로 바뀌었다. 무슨 낌새라도 있었으면 홍중은 아마 저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몰래 자신이 믿었던 사람이 벌인 일에 홍중은 아무것도 못하고 지금까지 지켜온 자리를 빼앗겼으며 지금 당장 홍중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만들고 지켜온 자리를 아무 이유 없이 빼앗아간 성화를 증오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다시 성화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저 위에 앉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높은 곳에 있었기에 사람도 많고 여러 사람이랑 일을 했었어서 인지 혼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이상한 홍중이었지만 이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냥 이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노력했던 것들은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며, 어쩌면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움직이는 홍중이었다.

 

하지만 성화에게 받은 기억 때문인지 홍중이 처음부터 다시 이 일을 차곡차곡 쌓아간다고 해서 홍중은 다른 사람과 같이 일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홍중은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여러 명이 일하는 것보다 혼자서 일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혼자서 일을 하기에 여러 명이서 하는 것보다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생각보다 더 더뎠지만 그래도 홍중은 다시 한 번 사람에게 또 배신을 당하고 지금 쌓고 있는 것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바에는 그냥 조금 더디더라도 혼자서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원래 하던 것이 있었기에 그런 것일까 제일 기초적이고 정보들만 조금 쌓아두니 홍중이 다시 위로 올라가는 것은 수월하였다. 홍중이 그런 일을 겪고 어느새 대략 3년 정도라는 시간이 흘렀으며 홍중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며 아직까지 성화가 지키고 있는 그 조직과 거의 비슷한 급으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어, 홍중 혼자만의 힘으로만 그렇게 높이까지 올려서 그런 것인지 홍중은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의 성화가 지키고 있는 조직을 지키고 있을 때보다 더 높은 곳에 있기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홍중은 천천히 복수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사실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홍중은 자신이 성화에게 한참 기대고 있었을 때 자신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면 재미있어했을 성화를 생각하며 평소보다 저 열정적으로, 그리고 다시 자신에 의해 무너질 성화의 반응을 생각하며 빠르게 진행을 하였다. 그렇게 계획을 다 짜고 작은 쪽지에 성화에게 전할 내용만 간단히 적어 아무도 성화가 앉아있는 그 건물을 지키고 있지 않을 때 홍중은 몰래 그 쪽지를 건물 앞에다 두고 그 일이 있고 나서 3년 중에 가장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건물 앞에 있던 쪽지는 성화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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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모를 사람이 보낸 건물 주소와 몇 시까지 오라는 연락에 성화는 의심을 하며 그 건물로 향하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으며 성화는 어딘가 익숙한 뒷모습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주저 없이 건물 안에 온전히 발을 들였고 그 순간 탕- 하는 총 소리는 넓은 지하실에 막힘도 없이 퍼져나갔다. 그 소리와 함께 성화의 어깨 근처는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갔으며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뒤를 돌아 보여 말했다.

 

 

“어서 와, 나랑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지? 잘 지냈어? 그동안 편하게 지낸 소감은 어때? 네가 무너뜨린 사람으로 인해 무너지는 기분은?”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홍중이었으며 홍중은 자신이 성화에 의해서 한없이 무너져내렸던 그때를 생각하며 아픈 듯 얼굴을 찡그리며 주저앉은 성화를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작은 시기로 인해 홍중의 자리를 빼앗기 위한 성화의 행동은 홍중을 높은 곳에서 밑바닥까지 떨어뜨렸으며 그 행동은 홍중의 안에 있는 분노를 깨워 복수심을 키워냈다. 그리고 성화를 진정 믿었던 홍중이 천천히 키워가던 그 분노로 가득 찬 복수심은 비로소 빛을 바랐다.

 

 

“그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네가 을이야. 내가 갑이고.”

 

 

그렇게, 그 장면을 뒤로 연극은 천천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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